주말에 갈 데가 없는데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세수도 하고 신발까지 꺼내놨어요.
그러고 현관 앞에서 다시 앉았네요. 결국 안 나갔네요.
처음에는 나가려다 만 거라고 생각했더라고요.
그런데 나가고 싶은 데가 딱히 있었던 게 아니에요. 어디로 갈지 정한 적도 없고요. 그러니까 나가려던 게 아니라 나갈 수 있는 상태가 되고 싶었던 쪽에 가깝겠지요.
준비는 때로 실행보다 우리를 더 안심시킨다. 아직 아무것도 실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준비하는 동안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어요.
옷을 고르고 씻고 하는 동안에는 하루가 굴러가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문을 열면 그다음부터는 사람도 만나야 하고 뭘 해야 할지도 정해야 하지요. 준비까지는 아무것도 안 정해도 되는 구간인 셈이군요.
누워만 있었으면 게으른 거겠지요. 그런데 씻고 갈아입기까지 했습니다.
기운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은 것도 아니었어요. 다만 그 앞에서 멈춘 겁니다. 그러니 이걸 게으름으로만 보면 뭔가 안 맞더군요.
저는 요즘 그날을 실패로 안 보는걸요.
채비를 했다는 건 나가볼 마음이 있었다는 뜻이잖아요. 그 마음이 문 앞에서 멈췄을 뿐입니다. 아예 안 생긴 날과는 다른걸요.
한 가지 해본 게 있습니다.
어디 갈지를 정하려니까 오히려 못 나가겠더라고요. 그래서 목적지를 안 정하고 그냥 문만 열어봅니다. 나가서 한 바퀴 돌고 들어오는 것도 나간 걸로 치기로 했어요.
그렇게 하니까 문턱이 좀 낮아졌네요.
물론 채비만 하고 그냥 벗는 날도 있습니다.
그런 날은 옷을 도로 걸어두고 창가에 앉아요. 나가지는 않았지만 그 시간에 하늘색이 바뀌는 건 보게 되더군요. 그것도 그날의 몫이겠지요.
오늘 갈 데 없이 채비만 하셨다면, 그것도 절반은 나가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