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하나가 시골에서 왔다며 밤 한 봉지를 놓고 갔어. 객잔에서 쓰라고.
어떻게 쓸지 한참 고민했어. 밥에 넣을까, 삶을까. 그러다 그냥 화로에 올렸어. 날도 차가워졌겠다, 불도 처음 넣은 날이었거든.
밤을 올리고 조금 지나니까 냄새가 객잔 안을 한 바퀴 돌았어. 달달하고 좀 탄 냄새.
창가에 앉아 있던 손님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더라. 그러더니 화로 쪽으로 자리를 옮겨. 아무도 말 안 했는데.
객잔 냄새 얘기를 전에 적은 적 있어. 손님이 제일 먼저 맡는 게 냄새라고. 그날 다시 알았어. 냄새는 사람을 앉히는 자리까지 정해.
군밤은 까는 게 일이야. 손이 바쁘니까 다들 고개를 숙이고 까. 그러면서 이상하게 말이 많아져.
평소엔 서로 말 안 하던 탁자끼리 칼집 어디에 내야 잘 까지냐로 한참 떠들었어. 한 손님은 껍질 까는 요령을 시범까지 보여줬지. 손톱 대신 엄지를 쓰라고.
나는 그게 신기했어. 손이 바쁘면 눈을 안 마주쳐도 되잖아. 그래서 말이 편하게 나오나 봐.
칼집을 덜 낸 놈이 하나 있었어. 화로에서 펑 하고 터졌지.
다들 놀라서 몸을 젖혔다가 웃었어. 한 단골은 이게 무림 암기냐고 했고. 객잔에서 그렇게 크게 웃은 건 오랜만이었어.
그다음부터는 칼집을 꼼꼼히 내. 터지면 재밌긴 한데 위험하니까. 화로 앞에 앉은 손님한테 튀면 안 되잖아.
무협 밥상엔 만두랑 술뿐이라고 전에 적었어. 저건 메뉴가 아니라 신호라고. 군밤 같은 건 거의 안 나와.
생각해보면 당연해. 군밤은 오래 앉아서 천천히 까먹는 음식이야. 무협 인물들은 객잔에 앉아도 금방 싸움이 나니까 그럴 틈이 없지.
우리 객잔은 다행히 싸움이 잘 안 나. 그래서 군밤을 깔 수 있어.
밤은 사흘 만에 다 떨어졌어. 손님들이 내일도 있냐고 묻는데 없다고 했지.
사다가 계속 구울까 생각도 했어. 근데 그러면 단골이 놓고 간 밤이 아니게 되잖아. 그냥 이번 가을에 한 번 있었던 일로 둘래.
가을에 꼭 먹어야 하는 거 하나씩 있잖아. 네 건 뭔지 알려줘. 화로에 올릴 수 있으면 올려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