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잔 창가에 국화 화분을 들였다는 얘기를 전에 적었어. 노란 작은 송이가 잔뜩 달린 거. 그 국화가 며칠 전부터 시들기 시작했어.
꽃잎이 갈색으로 마르고, 잎이 처지고. 물을 줘도 안 살아나더라고. 단골한테 물어보니 때가 된 거래. 국화는 원래 가을꽃이라 가을이 가면 진다고.
처음엔 치우려고 했어. 시든 꽃이 창가에 있으면 손님이 보기 안 좋을까 봐.
근데 화분을 들다가 멈췄어. 혼자 오는 손님들이 그 옆자리에 앉던 게 생각났거든. 국화 옆에 앉으면 혼자여도 덜 비어 보인다고 했던 그 자리.
꽃이 없어지면 그 자리도 그냥 바람 드는 자리가 되는 걸까 싶었지.
그래서 시든 꽃만 잘라내고 화분은 그대로 뒀어. 흙이랑 줄기만 남은 빈 화분.
신기한 건, 혼자 오는 손님들이 여전히 그 옆자리부터 앉는다는 거야. 꽃은 없는데. 한 손님한테 물어봤더니 그러더라. 꽃이 있던 자리라서 그냥 그쪽으로 손이 간대.
객잔 의자 얘기할 때 물건에 사람이 붙으면 못 버린다고 했었지. 화분도 그래. 꽃이 지고 나서도 자리는 남는 거야.
국화는 뿌리가 남아 있으면 다음 가을에 다시 핀대. 단골이 알려줬어. 겨울 동안 너무 춥지 않게만 두면 된다고.
그래서 화분을 창가에서 조금 안쪽으로 옮겨뒀어. 바람이 덜 드는 데로. 물은 가끔만 주고.
다음 가을에 다시 피면 그때 또 적을게. 그때까지 객잔이 열려 있으면.
무협 장면에선 꽃이 대개 질 때 나와. 매화가 흩날리는 결투, 꽃잎이 떨어지는 이별. 피는 장면보다 지는 장면이 많아.
생각해보면 무협은 끝을 아름답게 그리는 장르야. 근데 객잔 주인한테 지는 꽃은 끝이 아니라 기다림이야. 뿌리가 남아 있으니까.
다 끝났는데 못 치운 거 하나 있으면 들려줘. 객잔 창가엔 지금 그런 화분이 하나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