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처에 이백 명이 있는데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본인은 그걸 두고 인간관계에 실패했다고 하시더군요.
실패가 아니라 이름이 섞인 것입니다. 이백 명은 지인의 숫자였습니다.
먼저 오해를 걷겠습니다. 자주 만나면 친구가 되는 게 아닙니다.
매주 보는 지인이 있고 몇 해 못 본 친구가 있습니다. 오래 알았다고 갈리지도 않습니다. 십 년을 알아도 지인인 사람이 있죠. 그러면 무엇이 갈릴까요?
약해진 모습을 보였느냐입니다.
지인 관계에서는 서로 정돈된 쪽만 보여줍니다.
잘 지내는 이야기, 일이 잘 풀린 이야기, 재밌었던 이야기. 나쁜 일도 다 지나간 뒤에 웃으면서 말합니다. 이건 나쁜 게 아니라 그 관계의 규칙입니다.
그래서 지인은 편합니다. 준비하고 나가면 되니까요.
친구는 내가 못난 상태일 때를 본 사람입니다.
울었거나, 무너졌거나, 부탁을 했거나, 창피한 것을 들켰거나. 그걸 보고도 남아 있으면 이름이 넘어갑니다. 그 순간이 없으면 몇 년을 만나도 안 넘어갑니다.
그래서 친구는 조금 불편합니다. 내 안 좋은 부분을 아는 사람이니까요.
숫자로 보시면 됩니다.
세 칸 중 하나라도 이름이 있으면 친구입니다. 이백 명 중에 한 명도 없으셨다면, 그건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약한 쪽을 아무한테도 안 보이셨다는 뜻이겠지요.
여기서 하나 짚겠습니다. 친구가 많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한 명이면 충분한 사람도 있습니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지인을 친구로 착각할 때 생깁니다. 그러면 힘들 때 부르는데 상대가 당황합니다. 그 관계의 규칙에 없던 일이니까요. 그러고 나면 서로 어색해지고 지인마저 잃습니다.
이름을 정확히 갈라두면 그런 일이 안 생깁니다.
친구가 있으시면 할 일은 없습니다.
없으시면 할 일은 사람을 더 만나는 게 아닙니다. 이미 아는 사람 중 한 명에게 정돈 안 된 것을 하나 말해보는 것입니다. 큰 걸 말하면 부담스러우니 작은 것부터 하시면 됩니다. 요즘 좀 지친다는 말 정도요.
받아주면 그 사람이 후보입니다. 안 받아주면 그 사람은 계속 지인으로 두시면 됩니다. 그것도 나쁜 결과가 아닙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연락처의 길이는 이름을 정하지 못합니다. 약한 쪽을 보였는지만 세어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