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한 분이 도서관에서 혼자 오후를 보내고 계셨습니다. 친구와 만나기로 했는데 또 약속이 미뤄졌다고요. 휴대폰에 긴 문자를 쓰고 계시더군요. 그런데 결국 다 지우고 "괜찮아"만 보내셨습니다. 서운하다고 하면 쪼잔해 보일까 봐서요.
제 시간이 가볍게 여겨진 것 같습니다. 그날을 비워 두고 기다렸는데, 쉽게 미뤄지니까요.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 같습니다. 다른 일이 생기면 저와의 약속이 먼저 빠지는 걸 보면 마음이 쓰이더군요. 반복되면 쌓입니다. 한 번은 괜찮은데, 여러 번이면 서운함이 겹겹이 쌓이더군요.
앞서 약속 취소에 안도하는 마음을 다룬 글이 있는데, 이건 그 반대편입니다. 기다리던 쪽의 마음이죠.
쪼잔해 보일까 봐 걱정됩니다. 별것 아닌 일로 서운해하는 사람이 될까 봐요. 관계가 어색해질까 두렵습니다. 말을 꺼내면 친구가 멀어질 것 같죠. 상대 사정을 압니다. 바빴겠지, 무슨 일이 있었겠지 싶어서 삼키게 됩니다.
그런데 말하지 않으면 서운함이 다른 모양으로 새어 나옵니다. 앞서 빌려준 돈 돌려달라는 말을 적으며, 삼킨 말은 관계 밑에 고여 썩는다고 했죠. 만날 때마다 왠지 마음이 덜 가고, 연락을 먼저 하지 않게 되더군요.
앞서 니체 우정론을 적었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좋은 벗은 서로에게 맞설 줄 아는 사이라고 했죠. 맞설 때도 마음은 가까워야 한다고요.
서운함을 말하는 것도 그런 맞섬일 겁니다. 상대를 탓하려는 게 아니라, 이 관계를 아끼니까 꺼내는 말이죠.
서운함을 삼키는 자는 관계를 지킨다고 믿지만, 실은 그 밑에 금을 긋는다. 정직하게 꺼낸 서운함이 금을 메운다.
탓 대신 제 마음을 말하십시오. "너는 맨날 약속을 깨" 대신 "기다렸는데 미뤄져서 조금 서운했어." 작을 때 말하십시오. 쌓이고 쌓인 뒤에 터뜨리면 더 커집니다. 다음 약속의 방법을 함께 정하십시오. "다음엔 미리 알려 줄래?"처럼요. 상대의 사정도 들으십시오. 말하고 나면, 몰랐던 사정이 나오기도 하죠.
다음 주에 그 손님이 다시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친구에게 서운했다고 말했다고요. 친구가 요즘 회사 일이 힘들어서 그랬다며 미안하다고 했고, 다음 약속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시더군요.
서운함을 말하는 일은 늘 조심스러울 겁니다. 그래도 저는 그 마음을 삼켜 관계 밑에 고이게 하지 않고, 아끼는 마음으로 정직하게 꺼내며 관계를 다시 이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