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라고 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분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매번 뒷정리를 하는 사람이 따로 있더군요.
자유와 방종은 겉모습이 같습니다. 둘 다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는 구분이 잘 안 됩니다.
먼저 오해 하나를 걷겠습니다. 많이 하면 방종이고 적당히 하면 자유인 게 아닙니다.
아주 크게 사는 자유가 있고 아주 작게 사는 방종이 있습니다. 행동의 크기로 재면 갈리지 않죠. 그러면 무엇으로 갈릴까요?
그 선택의 값을 누가 내느냐입니다.
자유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그 결과도 내가 받는 상태입니다.
회사를 그만두면 수입이 줄고, 늦게 자면 다음 날이 무겁고, 하고 싶은 말을 하면 관계가 흔들립니다. 그걸 알고 고릅니다. 값이 붙어 있다는 걸 아는 선택이지요.
그래서 자유로운 사람은 결과를 남 탓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산 것이니까요.
방종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결과는 다른 사람이 받는 상태입니다.
늦게 와서 다른 사람이 기다리고, 안 치워서 다른 사람이 치우고, 아무 말이나 해서 다른 사람이 수습합니다. 본인은 값을 안 냈으니 자기가 자유롭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방종한 사람은 대개 자기가 방종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값을 안 봤으니까요.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한 번쯤 남에게 값이 가는 건 사는 일에 늘 있습니다. 문제는 그게 계속 같은 사람에게 갈 때입니다. 그때는 이름이 이미 넘어가 있겠지요.
여기가 중요합니다. 방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고 싶은 것을 줄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줄이는 게 아니라 값을 자기 쪽으로 옮기는 것이 답입니다. 늦게 자고 싶으면 다음 날 일정을 내가 조정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싶으면 그 수입 감소를 내가 감당하는 겁니다. 그러면 같은 행동이 자유가 됩니다.
행동은 그대로인데 이름만 바뀌는 일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자유 쪽이면 할 일은 없습니다. 값을 내고 계시니까요.
방종 쪽이면 할 일은 반성이 아니라 계산입니다. 최근 한 달 동안 내 선택 때문에 누가 뭘 더 했는지 적어보시면 됩니다. 적어놓으면 대개 한두 사람에게 몰려 있습니다.
그 값을 돌려받아 오시면 그때부터는 자유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건 같습니다. 청구서가 어디로 가느냐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