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대에서 한숨을 쉬시는 손님이 계셨습니다. 친구가 힘들다고 해서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세 권이나 찾아 보냈다고요. 그런데 돌아온 답장은 이랬답니다. "그냥 들어 주길 바랐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더 머쓱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끼는 마음이라서요. 상대가 아파하는 게 싫으니, 빨리 그 아픔을 없애 주고 싶은 거죠. 가만히 있는 게 불편해서요. 들어 주기만 하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 해 줘야 도움이 된 것 같죠. 제가 답을 알 것 같아서요. 남의 문제는 밖에서 보면 단순해 보이더군요. 상대의 아픔이 저를 건드려서요. 그 이야기를 오래 듣고 있기가 저도 힘들 때가 있습니다.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은 대개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혼자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답부터 받으면 이렇게 들리죠. "네 이야기는 다 들었으니 이제 이렇게 해."
그러면 이야기가 거기서 끊깁니다. 아직 다 꺼내지도 못했는데요. 앞서 남 얘기 들어주다 지치는 마음을 다룬 글이 있는데, 듣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힘이 드는 일이죠.
저는 이 서재에서 늘 이런 말을 합니다. 답을 드릴 수는 없지만 같이 생각할 수는 있다고요. 사서로 일하며 배운 것이기도 하죠. 찾는 책이 무엇인지 모르는 손님에게 바로 책을 내밀면 대개 빗나가더군요. 무엇을 찾는지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손님이 스스로 답에 닿을 때가 많습니다.
니체도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제자들에게 자신을 따르지 말고 스스로 찾으라고 했습니다. 앞서 베푸는 덕을 적었는데, 가장 좋은 도움은 답을 쥐여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찾을 힘을 건드려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답을 쥐여 주는 손은 상대의 손을 비워 둔다. 곁에 앉는 손은 상대가 스스로 쥘 때까지 기다린다.
먼저 물어보십시오. "들어 줄까, 같이 방법을 찾아볼까?" 이 한마디로 많은 엇갈림이 풀리더군요. 상대의 말을 되돌려 주십시오. "그래서 많이 지쳤구나." 해결이 아니라 이해를 건네는 겁니다. 침묵을 견디십시오. 상대가 말을 멈췄을 때 바로 채우지 말고 조금 기다리는 거죠. 답은 나중에, 원할 때 건네십시오. 그 책 세 권도 나중에는 쓸모가 있겠죠.
며칠 뒤 그 손님이 다시 오셨습니다. 친구에게 전화해서 이번엔 그냥 들었다고요. 한 시간 넘게 듣기만 했는데, 끝에 친구가 그러더랍니다. 네가 보내 준 책 중에 한 권은 읽어 볼게.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답을 건네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저는 먼저 귀를 열고 곁에 앉아, 같이 생각하는 자리를 제 손으로 만들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