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모임 합평 날, 원고를 가방에 넣어 온 손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꺼내지 않고 돌아가셨죠. 다음 날 반납하러 오셔서 털어놓으셨습니다. 써 놓긴 했는데, 누가 읽는다고 생각하니 손이 안 갔다고요.
글이 곧 저 같습니다. 글을 평가받으면 제가 평가받는 것 같은 거죠. 속을 들킨 것 같습니다. 글에는 평소 말로 안 하는 생각이 담기니까요. 완벽하지 않습니다. 고칠 데가 보이니 아직 보여 줄 때가 아닌 것 같더군요. 싫은 말이 오래 남습니다. 앞서 싫은 말이 오래 남는 이유를 적었는데, 글에 대한 한마디는 특히 깊게 박히죠.
혼자만 읽는 글도 의미가 있습니다. 앞서 일기를 못 쓰게 되는 이유를 다룬 글이 있는데, 저를 위한 글은 저만 읽어도 충분하죠.
다만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며 쓴 글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서랍 속에 있는 동안 그 글은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못합니다. 그리고 쓴 사람도 그 글에서 더 자라지 못하죠.
앞서 피로 써라 니체 뜻을 적었습니다. 니체는 제 삶으로 쓴 글만 사랑한다고 했죠. 그런 글일수록 보여 주기가 더 무섭습니다. 정말 제 것이니까요.
그런데 니체는 동시에 그런 글이 외워지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누군가의 안에 들어가 오래 남기를요. 그러려면 결국 누군가에게 건네져야 하죠.
서랍 속의 글은 상처받지 않지만 아무도 만나지 못한다. 건네진 글만이 다치고, 그리고 자란다.
첫 독자를 고르십시오. 모두에게가 아니라,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에게요. 어떤 말을 듣고 싶은지 먼저 말하십시오. "좋았던 데만 말해 줘"도 괜찮습니다. 처음엔 그게 필요하죠. 짧은 글부터 꺼내십시오. 가장 아끼는 글보다 덜 아끼는 글로 연습하는 겁니다. 평가와 저를 떼어 놓으십시오. 글에 대한 말은 글에 대한 말일 뿐, 제 전부에 대한 판결이 아닙니다.
다음 합평 날, 그 손님은 원고 가운데 한 쪽만 꺼내셨다고 합니다. 전부는 아직이라며요. 그런데 그 한 쪽에 대해 한 분이 "이 문장 오래 남는다"고 했다고, 그 말을 전하며 웃으시더군요.
글을 보여 주는 일은 앞으로도 떨릴 겁니다. 그래도 저는 서랍 속에만 두지 않고,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에게 한 쪽씩 건네며 제 글이 자랄 길을 열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