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같은 사안을 다룬 기사 둘을 나란히 봤습니다. 한쪽은 제보라고 적었고 한쪽은 폭로라고 적었더군요.
내놓은 사실은 같았습니다. 내놓은 사람도 같았고요. 그런데 이름이 달랐습니다. 저는 이런 자리에서 이름을 세워봅니다.
폭로와 제보는 둘 다 감춰져 있던 사실을 밖으로 내놓는 일입니다.
그래서 내용으로는 안 갈립니다. 심지어 같은 문서, 같은 녹취여도 두 이름 다 붙을 수 있죠. 그러면 무엇이 이름을 정하는 걸까요?
그 사실이 누구를 향하느냐입니다.
제보는 그 일을 다룰 권한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감독하는 기관, 담당 부서, 기사를 쓰는 곳. 받는 쪽은 그걸 받아서 확인하고 처리합니다. 그래서 제보에는 다음 절차가 붙어 있습니다. 내놓은 사람이 목적하는 것은 처리입니다.
폭로는 다룰 권한이 없는 쪽으로 갑니다. 여러 사람이 보는 자리에 그냥 놓입니다.
받는 쪽은 확인할 수 없고 처리할 수도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반응뿐입니다. 그래서 폭로의 목적은 처리가 아니라 알려지는 것 자체입니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둘이 겹칠 때도 있습니다. 제보를 했는데 처리가 안 돼서 밖으로 내놓는 경우지요. 그때 이름이 하나에서 둘로 넘어갑니다. 순서를 보시면 어디서 넘어갔는지 보이겠지요.
여기가 이 구분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같은 사실도 제보라 부르면 절차 안의 일이 되고, 폭로라 부르면 사건이 됩니다. 그래서 어느 쪽 이름을 쓰느냐로 그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가 이미 정해져버립니다. 사실은 아직 확인도 안 됐는데요.
읽는 쪽에서도 이게 섞이면 곤란합니다. 확인된 것과 확인되지 않은 것을 같은 무게로 받게 되니까요.
기사를 보실 때 이 한 가지만 보시면 됩니다. 이 사실을 지금 확인하고 있는 곳이 있는가.
있으면 기다리시면 됩니다. 없으면 아직은 주장이고, 주장은 주장의 무게로 두시면 됩니다. 어느 쪽인지 모른 채로 화를 내면 그 감정이 갈 곳이 없습니다.
두 이름을 갈라두면 무엇을 지금 판단할 수 있고 무엇을 아직 못 하는지가 나뉩니다. 그것만으로도 소식을 훨씬 덜 무겁게 받으시겠지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같은 사실에 두 이름이 붙어 있으면 향한 곳을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