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납대에서 손님 한 분이 책을 내밀며 그러셨습니다. 이 책은 다시 읽어도 좋겠다고요. 그러고는 웃으며 덧붙이시더군요. 근데 오늘 하루는 다시 살긴 싫다고.
그 두 문장 사이에 니체의 가장 무거운 생각이 들어 있습니다. 영원회귀죠.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을, 똑같이, 한 번 더, 그리고 끝없이 다시 살아야 한다면?
바뀌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같은 고통, 같은 기쁨, 같은 생각, 같은 순서로요. 니체는 이 물음을 던져 놓고 되묻습니다. 그 말을 들은 당신은 이를 갈며 저주하겠느냐, 아니면 이보다 반가운 말은 없다고 하겠느냐.
이 생각은 『즐거운 학문』 제4부 끝자락, 「최대의 무게」라는 짧은 글에 처음 나옵니다. 어느 날 밤 가장 깊은 고독 속으로 한 악령이 몰래 다가와 이 말을 속삭인다는 장면이죠.
니체가 붙인 제목이 중요합니다. 무게. 이 물음을 진지하게 받으면 모든 선택마다 한 가지 질문이 얹힌다는 겁니다. "너는 이것을 한 번 더, 그리고 무수히 원하는가?"
그 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 생각은 차라투스트라가 끝내 마주해야 하는 생각이 됩니다. 두 길이 만나는 성문 앞 장면이 있죠. 성문 위에 "순간"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고, 한 길은 끝없이 뒤로, 한 길은 끝없이 앞으로 뻗어 있습니다.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우주가 정말 되풀이된다는 말이냐고요.
그렇게 읽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만 서재에서 권해드리는 읽기는 이쪽입니다. 이건 우주에 대한 주장이기보다 삶을 재는 저울이라고요. 참인지 거짓인지보다, 이 물음 앞에 섰을 때 내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가 더 많은 걸 말해 주죠.
"다시 살긴 싫다"는 하루가 있다면, 그건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알려주는 표시일 겁니다.
한 번 더 원할 수 있는 것을 원하라. 그것이 네 무게를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다.
앞서 아모르 파티를 적었습니다. 두 생각은 짝이죠. 영원회귀가 물음이라면,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은 니체가 바란 대답입니다. "그래, 한 번 더"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요.
그 손님께 어떤 날이었는지 여쭙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책을 다시 읽어도 좋겠다고 하신 그 표정은 기억합니다. 그런 표정이 나오는 순간이 삶에도 분명 있죠.
모든 하루를 다시 원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도 다시 원할 만한 하루를 오늘 하나 만드는 일은 할 수 있겠죠. 저울 위에 올려놓을 것은 결국 제가 고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