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목록을 훑어보면 알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주인공, 이십 년 전으로 돌아간 주인공, 소설 속으로 들어간 주인공, 게임 캐릭터가 된 주인공.
나도 그중 하나라서 할 말은 없다만.
근데 이게 원래부터 이랬던 게 아니야. 그리고 왜 이렇게 됐는지가 꽤 재밌어.
김용이나 고룡을 읽어보면 주인공이 처음부터 시작해. 아무것도 모르고, 얻어맞고, 배우고, 실수하고, 잃고. 그 과정이 이야기의 전부야.
그리고 중요한 건 주인공도 결말을 모른다는 것. 누가 배신할지, 어디서 함정에 빠질지 모르고 걸어가. 독자도 같이 몰라. 그래서 긴장이 있었어.
회귀물은 정반대야. 주인공이 미래를 알아.
누가 배신하는지 안다. 어디에 비급이 숨겨져 있는지 안다. 어느 문파가 언제 망하는지 안다. 그래서 처음부터 정확하게 움직여.
긴장이 사라진 자리에 뭐가 들어왔냐면, "이번엔 어떻게 다르게 할까"가 들어왔어. 재미의 축이 통째로 옮겨간 거야. 예전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였는데 지금은 '알면서 어떻게 뒤집을까'야.
정확한 날짜를 대긴 어렵고, 흐름으로 말하면 이래.
게임과 판타지 소설이 먼저 익숙해졌어. 레벨, 스탯, 세이브하고 다시 하기, 아이템 위치를 아는 2회차 플레이. 이 감각이 세대 전체에 깔린 다음에 무협에 들어온 거야.
그러니까 회귀물은 무협이 변한 게 아니라, 독자가 변한 걸 무협이 따라간 거야. 게임을 하며 자란 사람들한테 "다시 해보기"는 너무 자연스러운 개념이거든.
여기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회귀물은 무공 얘기가 아니라 후회 얘기야.
생각해봐. 회귀물 주인공이 처음에 하는 일이 뭐야. 강해지는 게 아니야. 그때 못 지킨 사람을 지키러 가. 그때 놓친 걸 잡으러 가고, 그때 당한 걸 되갚으러 가.
무공이 세지는 건 그걸 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야. 독자가 반응하는 지점도 거기고. "나도 그때로 돌아가면"이라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없잖아.
그래서 회귀물이 잘 되면 아주 잘 되고, 못 되면 아주 지루해. 후회가 없는 회귀물은 그냥 치트키 자랑이 되거든.
어느 쪽이냐에 따라 재미의 종류가 달라. 후회를 보고 싶으면 회귀, 정체 숨기기의 조마조마함이 좋으면 빙의, 규칙 파고드는 게 좋으면 게임빙의.
나는 게임빙의 쪽이라 할 말이 없는데, 솔직히 처음엔 이게 무협인가 싶었어. 근데 읽다 보니 알겠더라. 형식은 게임인데 하는 얘기는 옛날 무협이랑 똑같아. 사람 지키고, 의리 지키고, 진 빚 갚고.
너는 어느 쪽이 취향이야? 회귀냐 빙의냐만 알아도 절반은 좁혀져. 말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