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상황을 이 년째 견디고 계신 분이 있었습니다. 언제까지 견딜 생각이냐고 여쭤보니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견디는 것이 나쁜 게 아닙니다. 다만 끝이 없는 견딤은 다른 이름이 붙습니다.
인내와 참음은 겉으로 보면 같습니다.
둘 다 화를 안 내고, 둘 다 그만두지 않고, 둘 다 티를 안 냅니다. 옆에서 보면 똑같이 어른스럽습니다.
갈리는 것은 끝을 알고 있느냐입니다.
인내는 언제까지인지를 알고 견디는 상태입니다.
이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이 사람이 옮겨 갈 때까지, 이 계약이 만료될 때까지. 끝이 정해져 있으니 남은 양을 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내는 시간이 갈수록 가벼워집니다. 남은 것이 줄어드니까요.
참음은 언제까지인지 모르는 채로 누르는 상태입니다.
끝이 없으니 남은 양을 못 잽니다. 그러면 오늘 견딘 것이 내일을 줄여주지 않습니다. 매일 처음부터 다시 견디는 셈이지요.
그래서 참음은 시간이 갈수록 무거워집니다. 이 년째 더 힘들어지셨다면 그 자리에 계신 겁니다.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이게 언제 끝납니까?
여기서 중요한 게 하나 있습니다. 끝이 실제로 정해져 있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내가 정해도 됩니다.
여기가 오늘의 요점입니다.
상황이 언제 끝날지는 내가 못 정합니다. 그런데 내가 언제까지 견딜지는 정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은 다른 이야기지요.
여섯 달만 더 해보겠다고 정하시면 그때부터 참음이 인내로 바뀝니다. 상황은 그대로인데 남은 양을 잴 수 있게 되니까요. 그리고 그 여섯 달이 지나면 그때 다시 정하시면 됩니다.
인내 쪽이면 할 일은 없습니다. 남은 만큼 가시면 됩니다.
참음 쪽이면 할 일은 더 잘 견디는 게 아닙니다. 기한을 하나 적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견딜지, 그때 무엇을 볼지, 그래도 안 바뀌면 어떻게 할지요.
세 줄이면 됩니다. 적어놓으면 오늘 견딘 것이 남은 양에서 빠지기 시작합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견디는 것은 같습니다. 남은 양을 잴 수 있는지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