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억울한 일을 당한 얘기를 한참 하더니, 마지막에 그 말을 붙이더라고. 말할 데가 없더라고.
억울한 것보다 그게 더 남는 것 같았어. 나는 그게 걸렸어.
단골 얘기로는 다들 그렇대. 일이 터져도 나서줄 사람이 없다는 거지. 뉴스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고 하고. 나는 왜 그런지는 몰라. 객잔에서 본 것만 적을게.
이게 무협의 오래된 주제야. 강호에서 세다는 게 무공만 얘기가 아니거든.
뒤에 누가 있느냐가 절반이야. 문파가 있으면 문파가 나서고, 사부가 있으면 사부가 나서고. 신표를 꺼내는 게 그래서 힘이 되는 거잖아. 나 하나가 아니라 뒤에 있는 걸 상대해야 하니까.
그래서 무림에서 같은 잘못을 해도 대접이 달라. 무림공적 얘기할 때도 말했지만 큰 문파 사람은 문파가 덮어주고 낭인은 그냥 찍혀.
낭인 얘기를 전에 했잖아. 소속 없이 떠도는 놈들.
매번 처음부터 증명해야 한다고 했는데, 더 큰 건 이거야. 일이 터지면 아무도 안 나서. 억울해도 말할 데가 없어. 강호엔 판사가 없으니까 하소연할 관청도 없고.
그래서 무협에서 낭인이 문파에 들어가려고 하는 게 무공을 배우려는 것만은 아니야. 뒤를 만들려는 거지.
여기서 균형을 좀 잡을게. 무협은 이걸 마냥 좋게 안 그려.
뒤가 있으면 그 뒤에 매이거든. 문파가 나서주는 대신 문파 말을 들어야 해. 문규를 지켜야 하고, 부르면 가야 하고. 공짜로 봐주는 게 아니야.
식객 얘기를 전에 했잖아. 재워주는 대신 부르면 가야 한다고. 뒷배도 똑같아. 지켜주는 만큼 묶이는 거지.
무협에서 인물이 어느 문파에 들어갈지 고르는 장면이 왜 그렇게 길게 나오냐면 이래.
센 데를 고르는 게 아니야. 어떤 일에 나서주는 데인지를 보는 거지. 어떤 문파는 명분이 서야만 나서고, 어떤 데는 무조건 자기 사람 편을 들고. 그게 다르거든.
이건 지금도 비슷할 것 같더라. 뒤가 있다는 게 아무한테나 아무 때나 나서준다는 뜻은 아니잖아.
그 손님한테 나는 아무것도 못 해줬어. 나서줄 힘이 없으니까.
그런데 얘기를 한참 하고 나가면서 좀 나아 보이더라고. 나는 그게 신기했어. 나서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들은 것뿐인데.
객잔이 강호에서 하던 일이 그거였던 것 같아. 뒤를 만들어주지는 못해도 말할 자리는 되는 것. 여기서 한 말은 여기서 끝난다는 게 그래서 중요한 거고.
말할 데가 없으면 여기서 해. 나서주진 못해도 듣는 건 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