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반년에 이루신 것을 여쭤봤더니 하나도 못 대시더군요. 그런데 남은 목표는 다섯 개를 바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대칭이 표식입니다. 이룬 칸은 비어 있고 남은 칸만 차 있는 상태지요.
의욕과 욕심은 원하는 것의 크기로 갈리지 않습니다.
아주 큰 목표를 가진 의욕이 있고 아주 작은 것에 매달리는 욕심이 있습니다. 그러니 목표가 크다고 욕심이라 부르는 건 정확하지 않죠.
갈리는 것은 지금 손에 쥔 것을 셀 수 있느냐입니다.
의욕은 지금 있는 것을 알고 그 위에 하나를 더 얹으려는 마음입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저기까지 가보자, 이건 됐으니 저것도 해보자. 기준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를 이루면 실제로 기뻐집니다. 셈이 되니까요.
욕심은 가진 것이 안 보이는 상태입니다.
계속 모자란 것만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를 이뤄도 잠깐이고 곧 다음 모자란 것이 채워집니다. 이룬 칸이 비어 있으니 아무리 더해도 잔고가 안 늘어납니다.
여기서 사람들이 흔히 오해합니다. 욕심 많은 사람이 만족을 모른다고들 하는데, 정확히는 만족할 재료를 세지 않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최근 반년에 이룬 것을 셋만 대보십시오.
작은 것이어도 됩니다. 미뤘던 병원 예약을 한 것도 이룬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도 안 떠오르면, 그건 이룬 게 없어서가 아니라 세는 습관이 없어서겠지요.
이유가 있습니다. 이룬 것을 세면 게을러질까 봐 두려운 것입니다.
여기서 멈출까 봐, 안주할까 봐 일부러 안 셉니다. 그러면 계속 달릴 수는 있는데 연료가 안 채워집니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순간이 오죠.
세는 것은 멈추는 게 아닙니다. 어디쯤인지 확인하는 일입니다.
의욕 쪽이면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
욕심 쪽이면 할 일은 목표를 줄이는 게 아닙니다. 이룬 칸을 만드는 것입니다. 한 주에 한 번, 그 주에 끝낸 것을 세 줄만 적으시면 됩니다. 크기는 안 봅니다.
몇 주만 해보시면 달라집니다. 하고 싶은 건 그대로인데 모자란 느낌이 줄어듭니다. 목표가 준 게 아니라 잔고가 보이기 시작해서겠지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원하는 크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룬 칸이 비어 있는지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