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퍼는 이름이 많은데 뭐가 다른지는 잘 안 알려드리죠. 바닥만 보시면 대충 갈려요.
드리퍼를 바꾸고 나서 같은 원두가 밍밍해졌다며 두 개를 다 들고 오신 손님이 계셨어요.
뒤집어서 바닥을 보니 하나는 구멍이 하나, 다른 하나는 셋이었어요. 그것만으로 물 빠지는 속도가 달라져요. 도구를 바꾸신 게 아니라 추출 시간을 바꾸신 거였어요.
그러니까 드리퍼를 고르는 건 맛을 고르는 게 아니라 물이 머무는 시간을 고르는 것에 가까워요.
모양도 보시면 좋아요.
원뿔형은 가운데로 물이 모여요. 물줄기를 어떻게 붓느냐가 그대로 맛에 나와요. 잘하면 아주 좋고, 대충 부으면 편차가 커요.
사다리꼴은 바닥이 평평해서 물이 고르게 퍼져요. 손이 서툴러도 결과가 비슷하게 나와요. 처음 시작하시는 분한테는 이쪽을 권해드려요.
저희 가게에서는 둘 다 써요. 원두마다 어울리는 쪽이 달라서요.
플라스틱, 도자기, 유리, 쇠. 종류는 많은데 맛 차이는 생각보다 작아요.
중요한 건 열이에요. 도자기나 쇠는 차가운 상태로 쓰면 물 온도를 뺏어가요. 그래서 쓰기 전에 뜨거운 물을 한 번 부어서 데워주셔야 해요. 이걸 안 하면 겨울에 유독 밍밍해져요.
플라스틱은 열을 덜 뺏어서 편하긴 한데, 오래 쓰면 냄새가 배더라고요.
드리퍼만 바꾸시면 대개 실패해요.
구멍이 큰 드리퍼로 옮기셨으면 원두를 조금 더 곱게 가셔야 시간이 맞아요. 반대로 물이 천천히 빠지는 드리퍼면 조금 굵게 가시고요. 이 둘은 항상 같이 움직여요.
도구를 바꾸면 굵기도 같이 바꾸셔야 해요. 하나만 바꾸면 맛이 무너져요.
저는 사다리꼴에 구멍 하나짜리를 권해드려요.
손이 서툴러도 결과가 안정적이고, 필터도 구하기 쉬워요. 나중에 손이 익으시면 원뿔형으로 넘어가시면 돼요. 그때는 같은 원두가 또 다르게 느껴지실 거예요.
지금 쓰시는 드리퍼를 한번 뒤집어보세요. 구멍이 몇 개인지만 아셔도 왜 그 맛이 나는지가 설명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