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제안을 다른 사람이 냈을 때는 바로 찬성하셨다가, 나중에 그 사실을 아시고 멈칫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내용은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반응이 둘이었습니다. 그러면 걸린 것은 내용이 아니었던 겁니다.
의구심과 반감은 둘 다 상대가 낸 것을 그대로 못 받는 상태입니다.
둘 다 표정에 나타나고, 둘 다 상대가 알아챕니다. 겉으로는 구별이 안 되죠. 그러면 무엇이 갈릴까요?
걸리는 것이 내용이냐 사람이냐입니다.
의구심은 그 말이 맞는지 아직 모르겠는 상태입니다.
근거가 약하거나, 앞뒤가 안 맞거나, 확인이 덜 됐습니다. 그래서 의구심에는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이건 어떻게 되는 거냐고 짚을 데가 나오죠.
의구심은 풀립니다. 확인이 되면 없어집니다. 그리고 확인되면 그 사람 말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반감은 그 사람이 하는 말이라서 안 받아지는 상태입니다.
내용을 따로 떼어보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짚을 데가 안 나옵니다. 대신 이유가 나중에 붙습니다. 뭔가 미심쩍다는 식으로요.
반감은 확인으로 안 풀립니다. 근거를 다 대줘도 다른 데가 걸리거든요. 걸리는 것이 내용이 아니니까요.
이렇게 해보시면 됩니다. 같은 말을 다른 사람이 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이 질문은 아프지만 정확합니다. 그리고 대개 십 초 안에 답이 나옵니다.
여기가 오늘의 요점입니다.
반감을 의구심이라고 부르면 계속 질문을 하게 됩니다. 상대는 답을 주는데 안 풀리니 또 묻습니다. 그러면 그 자리가 길어지고, 양쪽 다 지칩니다.
그리고 상대는 압니다. 답을 줘도 안 풀리는 것은 내용 문제가 아니라는 걸 몇 번 겪으면 알게 되니까요. 그때부터는 관계가 나빠지는 쪽으로 갑니다.
의구심 쪽이면 할 일은 짚어서 묻는 것입니다. 답이 오면 끝납니다.
반감 쪽이면 할 일은 그 제안을 더 따지는 게 아닙니다. 사람과 내용을 따로 놓는 것입니다. 내용만 종이에 옮겨 적고 누가 냈는지 지운 채로 보시면 됩니다.
그러고도 반대할 이유가 있으면 그건 정당한 반대입니다. 없으면 그건 다른 문제이고, 그 문제는 회의에서 풀 것이 아니겠지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못 받아들이는 것은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말했어도 그랬을지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