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단어가 잔뜩 실린 그림책을 빌려 가신 손님이 계셨습니다. 아이 주려고요, 하셨죠. 그런데 반납하실 때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제가 더 많이 봤어요. 요즘 누가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면 "그냥"밖에 할 말이 없더라고요.
감정을 미뤄 두는 게 익숙합니다. 할 일이 많으면 느끼는 건 나중으로 미뤄지죠. 그러다 보면 무엇을 느꼈는지조차 흐려집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도록 배웠습니다. 앞서 감정 표현이 서툰 성격을 적었는데, 오래 숨기다 보면 저에게도 숨겨지더군요. 감정을 부르는 말이 적습니다. "좋다, 싫다, 피곤하다" 몇 개로 모든 걸 부르면 그 사이의 결이 다 뭉개지죠. 여러 감정이 섞여 있습니다. 서운하면서 고맙고, 지치면서 설레고. 섞인 감정은 한 단어로 안 잡힙니다.
막연한 덩어리였던 기분에 이름을 붙이면, 그 감정과 거리가 생깁니다. "그냥 별로야"가 "서운해"가 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묻게 되죠. 그러면 할 수 있는 게 생깁니다.
이 서재 근처에는 감정과 감정 사이의 차이를 하나씩 짚는 글들이 많습니다. 서운함과 실망, 불안과 두려움 같은 것들이요. 이름을 정확히 붙이려는 이유도 여기 있을 겁니다.
앞서 신체는 큰 이성 뜻을 적었습니다. 니체는 생각과 느낌 뒤에 몸이라는 큰 이성이 있다고 했죠.
감정이 잘 안 보일 땐 몸에게 먼저 물어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어깨가 굳었는지, 숨이 짧은지, 배가 답답한지. 머리가 모르는 감정을 몸이 먼저 알고 있을 때가 많더군요.
이름 없는 감정은 안개처럼 너를 감싼다. 이름을 불러 주는 순간 그것은 네 곁을 함께 걷는 동행이 된다.
하루에 한 단어를 고르십시오. 자기 전에 오늘 기분을 한 단어로요. "피곤" 말고 조금 더 정확한 말로. 몸에게 물어보십시오. 어디가 굳었는지, 어디가 가벼운지. 섞인 감정은 둘 다 적으십시오. "서운한데 고맙다." 하나로 정리하지 않아도 됩니다. 감정 단어를 늘리십시오. 그 손님처럼 그림책이어도 좋습니다. 어른에게도 쓸모 있죠.
그 손님은 그 그림책을 하나 사셨다고 했습니다. 아이랑 매일 밤 오늘의 감정 하나씩 고르는 놀이를 한다고요. 아이보다 자기가 더 오래 고민한다며 웃으셨죠.
제 감정이 흐릿한 날은 또 올 겁니다. 그래도 저는 그 안개 같은 기분에 하나씩 이름을 붙여 주며, 제 마음을 제가 알아보는 사람이 되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