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한 분이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아픈 어머니를 돌보느라 한동안 회사를 쉬었다고요. 남들은 경력이 끊긴다고 걱정하는데, 잘한 건지 모르겠다고 하셨죠. 그 말에 『선악의 저편』의 한 줄을 보여 드렸습니다.
사랑으로 행해진 것은 언제나 선악의 저편에서 일어난다.
손님은 오래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이 문장은 『선악의 저편』의 짧은 잠언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앞서 선악의 저편 뜻을 적으며, 니체가 넘어서려 한 것은 물려받은 선악의 틀이었다고 했죠. 이 잠언은 그 저편이 어디인지 가장 따뜻하게 보여 주는 한 줄입니다.
우리는 대개 무언가를 할 때 옳은지 그른지, 이득인지 손해인지를 따집니다. 그런데 사랑에서 나온 행동은 그 저울에 오르기 전에 이미 일어나 있죠. 아픈 사람 곁에 앉는 일, 넘어진 아이를 일으키는 일처럼요.
니체는 그런 행동을 선과 악의 잣대로 재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규칙을 지켜서 한 일도, 보상을 바라서 한 일도 아니니까요. 앞서 니체 덕 있는 자들 뜻을 적으며 대가를 바라는 착함을 이야기했는데, 이 문장은 그 반대편, 대가를 따지지 않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렇게 읽을 필요는 없을 겁니다. 사랑을 핑계로 남을 다치게 하는 일도 있으니까요. 다만 이 문장이 건네는 위로는 분명합니다. 마음이 먼저 움직여서 한 일을 남의 저울로 다시 재며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사랑으로 내민 손은 저울 위에 올리지 마라. 그 손은 재어지기 전에 이미 닿았다.
마음이 먼저 움직였던 일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일을 계산으로 다시 평가하며 후회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남의 잣대로 그 일을 재지 마십시오. 앞서 고르고 나서 후회하는 버릇을 다룬 글이 있는데, 사랑으로 고른 일은 특히 그렇습니다. 다만 저도 돌보십시오. 사랑으로 남을 돌보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놓치기 쉬우니까요. 앞서 나를 위해 돈 쓰는 죄책감을 적었는데, 제 잔도 채워야 오래 돌볼 수 있죠.
그 손님은 그 문장을 수첩에 적어 가셨습니다. 몇 달 뒤 어머니가 회복하셨다며 다시 오셨죠. 이제 다시 일을 찾는 중인데, 그때 쉰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사랑으로 한 일을 두고 저울질하고 싶은 날은 또 올 겁니다. 그래도 저는 그 일을 선악의 저울에서 내려놓고, 그 마음을 제 삶의 가장 단단한 부분으로 품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