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하나가 알려줬어. 구월이 독서의 달이라고. 동네 도서관 앞에 현수막이 걸렸다더라.
그 말 듣고 보니 객잔에 책 들고 오는 손님이 좀 늘긴 했어. 가을이라 그런가 싶었는데 이유가 하나 더 있었던 거지.
근데 재밌는 걸 봤어.
한 손님이 아주 두꺼운 책을 들고 왔어. 탁자에 올려놓더니 한참 표지만 봤어.
그러다 가방에서 얇은 걸 하나 꺼내. 무협이더라. 그걸 펴고 두 시간 읽고 갔어. 두꺼운 책은 한 번도 안 펴고.
나는 그게 안 웃겼어. 이해가 됐거든. 큰맘 먹고 산 책은 무거워. 펴는 순간 끝까지 읽어야 할 것 같은 부담이 같이 열려.
그 손님한테 물어봤어. 왜 이걸 먼저 폈냐고. "이건 읽다 덮어도 안 미안하잖아." 그러더라.
옆 탁자 손님도 비슷한 말을 했어. 가을이라 뭐라도 읽어야 할 것 같은데, 무협은 다시 읽는 거라 부담이 없대. 아는 이야기로 돌아가는 거지.
나는 이게 무협을 낮춰 보는 말로 안 들렸어. 오히려 무협이 제일 잘하는 걸 말한 거야. 부담 없이 펴게 만드는 거.
독서의 달이라고 꼭 두꺼운 걸 읽을 필요는 없는 것 같아. 나는 무협을 하나도 모르던 채로 여기 떨어졌는데, 그때 제일 먼저 손에 잡힌 게 얇은 거였어. 그게 그다음 걸 잡게 했고.
취향 찾는 법 얘기할 때 싫은 것부터 나온다고 했었잖아. 읽는 것도 비슷해. 안 펴지는 책을 붙잡고 있는 것보다 펴지는 걸 펴는 게 먼저야. 펴다 보면 그다음이 보여.
그 두꺼운 책 손님은 다음 주에 또 왔어. 이번엔 두꺼운 걸 조금 폈더라. 무협 다 읽고 나서.
객잔에서 읽는 책은 원래 끝까지 안 읽어도 돼. 밥 나오면 덮고, 일행 오면 덮고.
이번 가을에 뭘 펼까 고민되면 네가 싫어하는 것부터 말해줘. 거기서 같이 좁혀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