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냉장고에 오이가 든 김밥만 남아 있던 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동료가 "나 오이 혐오해"라고 하더니, 오이만 빼서 나머지를 맛있게 먹었다고 하더군요.
그 말은 과장입니다. 오이만 빼면 끝나는 감정이었으니까요. 그 동료의 감정은 혐오가 아니라 싫음입니다.
싫음과 혐오는 둘 다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감정입니다.
얼굴이 찡그려지고, 손이 안 가고, 피하고 싶어집니다. 반응이 비슷하니 요즘은 싫다는 말 대신 혐오라는 말을 쉽게 쓰시죠. 그렇다면 둘은 어디서 갈릴까요?
싫음은 내가 피하면 끝나는 감정이고, 혐오는 그것이 아예 없어지기를 바라는 데까지 가는 감정입니다.
싫음은 나와 맞지 않는 것을 멀리하고 싶은 감정입니다.
내가 안 먹으면 되고, 내가 안 가면 되고, 내가 안 보면 됩니다. 그 대상이 세상에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내 접시에만 없으면 되니까요. 그래서 싫음은 취향에 가깝습니다. 남이 그것을 좋아해도 크게 불편하지 않습니다.
혐오는 대상을 피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견디기 어렵고,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혐오에는 방향이 있습니다. 내 쪽이 아니라 대상 쪽을 향하죠. 특히 사람이나 집단을 향할 때 혐오는 무거운 말이 됩니다.
오이를 뺀 동료는 오이가 세상에서 없어지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오이를 먹는 것도 아무렇지 않았고요.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대부분은 첫 번째에서 끝납니다. 그런데도 혐오라고 부르면 감정이 실제보다 커지겠지요.
싫음을 혐오라고 부르시면 작은 취향이 큰 적대감처럼 들립니다. 말하는 나도 그 크기에 맞춰 반응하게 되고요.
싫음이라고 부르시면 피하면 되는 일이라는 것이 보입니다. 오이 하나를 빼는 것만큼의 크기라는 것도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같습니다. 피하면 끝나는지만 보시죠.
정확히 부르는 것만으로 작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