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이야기가 나왔는데 화를 내지 않으시더군요. 짧게 웃고 넘기셨습니다.
화를 안 냈으니 다 풀린 것으로 보였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화가 안 나는 것은 풀린 상태일 수도 있고 다른 이름일 수도 있습니다.
미움과 경멸은 둘 다 그 사람이 싫은 상태입니다.
둘 다 가까이 하고 싶지 않고, 둘 다 잘되는 걸 보고 싶지 않습니다. 세기로도 안 갈립니다. 아주 강한 미움이 있고 조용한 경멸도 있죠.
갈리는 것은 상대를 어디에 두느냐입니다.
미움은 상대를 나와 같은 높이에 두고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움에는 감정이 실립니다. 화가 나고, 억울하고, 생각하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상대가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미움은 관계가 아직 살아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상대가 사과하면 마음이 움직입니다. 안 받아줄 수는 있어도 움직이기는 하죠.
경멸은 상대를 나보다 낮은 자리에 두고 판정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감정이 잘 안 실립니다. 화가 안 납니다. 화는 나와 비슷한 상대에게 나는 것이니까요. 대신 짧게 웃고 넘기게 됩니다.
경멸은 관계가 이미 닫힌 상태입니다. 상대가 사과해도 마음이 안 움직입니다. 사과할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상상해보시면 됩니다. 그 사람이 지금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어떻겠습니까?
흔들린다고 용서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흔들린다는 것만 보시면 됩니다.
여기가 오늘의 요점입니다. 경멸은 미움보다 편해 보입니다.
화가 안 나니까 덜 힘들어 보이거든요. 그래서 미운 사람을 빨리 경멸 쪽으로 옮기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아래에 두면 그 사람이 나를 못 건드리니까요.
그런데 이건 값이 있습니다. 한 사람을 아래에 두는 습관이 생기면 다음 사람에게도 그 자리가 쉽게 만들어집니다. 그러면 상처는 덜 받는데 아무하고도 안 부딪히게 되겠지요.
미움 쪽이면 할 일은 그 감정을 정확히 적어보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미운지가 나오면 크기를 잴 수 있습니다.
경멸 쪽이면 할 일은 그 사람을 다시 좋게 보는 게 아닙니다.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아래에 둔 채로 가까이 있으면 나도 계속 판정하는 일을 해야 하니까요. 그건 생각보다 힘이 듭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싫은 것은 같습니다. 사과가 왔을 때 흔들리는지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