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사람을 두고 저런 사람 안다고 말씀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러고는 그날 이후로 그 판단을 한 번도 안 바꾸셨습니다.
빠른 판단이 다 틀린 건 아닙니다. 다만 그 판단이 어디서 왔는지에 따라 이름이 갈립니다.
분별과 편견은 둘 다 짧은 시간에 사람이나 상황을 가르는 일입니다.
둘 다 빠르고, 둘 다 대개 맞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심지어 실제로 맞을 때도 있고요. 그러면 무엇이 갈릴까요?
그 판단이 겪은 뒤에 생겼느냐입니다.
분별은 여러 번 겪으면서 쌓인 기준으로 가르는 일입니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대개 이렇더라는 것을 여러 번 봤습니다. 그래서 빠릅니다. 재료가 이미 있으니까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분별은 바뀔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새로 겪은 것이 기준과 다르면 기준이 조정됩니다. 겪은 것에서 나왔으니 겪은 것으로 고쳐지죠.
편견은 그 사람을 겪기 전에 이미 있던 판단입니다.
어디 출신이라서, 어떤 일을 해서, 몇 살이라서. 그 사람 자체에서 나온 게 아니라 붙어 있는 표시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편견은 안 바뀝니다. 겪은 것에서 나온 게 아니니 겪은 것으로 안 고쳐집니다. 오히려 맞는 사례만 눈에 들어오고요.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빠른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안 바뀌는 것이 표식입니다.
여기가 오늘의 요점입니다.
편견도 맞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판단이 옳았다고 여기게 되고, 더 굳어집니다. 그런데 맞은 것과 그 방식이 옳은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편견은 열 번 중 서너 번 맞습니다. 그리고 그 서너 번이 나머지를 덮어버립니다. 안 맞은 경우는 예외로 처리되니까요. 그래서 스스로는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느끼게 되겠지요.
분별 쪽이면 할 일은 없습니다. 그대로 쓰시면 됩니다.
편견 쪽이면 할 일은 판단을 안 하는 게 아닙니다. 한 번은 틀릴 자리를 남겨두는 것입니다. 첫 판단을 적어두고, 몇 번 겪은 뒤에 다시 보시면 됩니다.
적어두지 않으면 바뀌었는지도 모릅니다. 기억이 판단에 맞춰 정리되니까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빠른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바꿔본 적이 있는지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