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서가와 공예 서가 사이에서 오래 서 계신 손님이 있었습니다. 대학원 진학 대신 목공을 배우기로 했다고요. 결정은 했는데 자꾸 진로 서가 쪽을 돌아보게 된다고 하시더군요. 남들은 다 그쪽으로 가는데, 하시면서요.
비교할 사람이 없습니다. 다들 가는 길은 앞사람의 등을 보며 걸을 수 있죠. 다른 길은 앞이 비어 있죠. 설명해야 합니다. "왜 그쪽으로 가?"라는 질문을 계속 듣게 되죠. 대답할 때마다 제 결정을 다시 심판받는 기분이 듭니다.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남들이 가는 길에서 한 번 벗어나면 다시 못 들어갈 것 같은 두려움이요. 결과가 늦게 보입니다. 정해진 길은 단계마다 확인받는데, 다른 길은 한참 걸어야 무언가 보이더군요.
다른 길 위의 불안은 길이 틀려서가 아니라 지도가 없어서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서 남보다 느린 것 같은 마음과 서른 앞둔 조급함을 적었는데, 그 마음들도 대개 남의 시간표를 기준으로 삼을 때 커지더군요.
니체는 「중력의 영에 대하여」에서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나의 길이다. 너희의 길은 어디 있느냐?" 하고. "그 길"이란 것은 없다.
앞서 그 장을 적었는데, 다른 길을 고른 사람에게 이 문장은 특히 힘이 됩니다. 정답인 하나의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각자가 걷는 길이 있을 뿐이라는 거죠. 니체 자신도 교수직을 일찍 내려놓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걸었죠.
남들이 다져 놓은 길은 편하지만 남의 발자국만 남는다. 네가 낸 길에는 네 발자국이 남는다.
고른 이유를 적어 두십시오. 흔들릴 때마다 꺼내 볼 수 있게요. 앞서 고르고 나서 후회하는 버릇을 적었는데, 이유를 잊으면 불안만 남습니다. 앞서 간 사람을 찾아보십시오. 다른 길이라도 먼저 걸은 사람은 대개 있습니다. 책이나 강좌에서 만날 수 있죠. 작은 이정표를 세우십시오. 석 달 뒤, 일 년 뒤에 어디쯤 있고 싶은지요. 지도 없는 길에 제가 그리는 지도입니다. 설명은 짧게 하십시오. 모든 사람을 설득할 필요는 없겠죠.
그 손님은 결국 공예 서가에서 목공 책 세 권을 빌려 가셨습니다. 몇 달 뒤 오셔서 직접 만든 작은 책꽂이 사진을 보여 주셨죠. 아직 서툴지만 매일 조금씩 나아진다고요.
다른 길은 여전히 불안할 겁니다. 그래도 저는 남들이 가는 쪽을 돌아보는 대신, 제가 고른 길 위에 제 발자국을 하나씩 남기며 그 길을 제 것으로 만들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