볶은 지 하루 된 원두로 에스프레소를 뽑은 적이 있어요. 거품만 잔뜩 나오고 맛이 텅 비어 있었어요.
신선할수록 좋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커피는 좀 다릅니다.
볶는 동안 원두 안에 가스가 많이 생겨요. 그게 며칠에 걸쳐 천천히 빠져나가죠. 이 빠지는 기간을 디게싱이라고 불러요.
가스가 너무 많이 남아 있으면 물이 커피 사이로 못 들어가요. 밀어내니까요. 그래서 겉으로는 거품이 잔뜩 나는데 정작 맛은 안 나오는 상태가 돼요.
도구에 따라 좀 달라요.
에스프레소가 가장 예민해요. 압력을 걸어서 짧게 뽑기 때문에 가스가 남아 있으면 바로 티가 나거든요. 드립은 물이 천천히 지나가서 덜해요.
진하게 볶은 원두는 가스가 더 많이 생겨요. 그래서 조금 더 기다려야 해요.
옅게 볶은 원두는 상대적으로 빨리 안정돼요. 사나흘이면 괜찮은 경우도 있고요.
가게에서는 새 원두가 들어오면 며칠에 걸쳐 뽑아보고 그 원두의 자리를 찾아요. 같은 봉지인데 사흘째와 열흘째가 다르거든요.
여기서부터는 반대 얘기예요.
가스가 다 빠지고 나면 이번엔 향이 빠지기 시작해요. 그래서 좋은 구간이 영원하지 않아요. 대략 볶고 한 달 안쪽이 편하고, 그 뒤로는 눈에 띄게 밋밋해져요.
정리하면 이래요. 처음 며칠은 이르고, 그다음 몇 주가 좋고, 한 달이 지나면 늦어요.
원두를 사고 바로 못 열어서 아쉬워하실 필요는 없어요. 며칠은 오히려 기다리는 시간이에요.
어제 말씀드린 블룸으로 보시면 돼요.
물을 부었을 때 크게 부풀면 아직 가스가 많은 거예요. 그러면 하루이틀 더 두셔도 좋아요. 적당히 부풀면 지금이 좋은 구간이고요.
갓 볶은 원두를 받으셨으면 며칠만 기다렸다 열어보세요. 그게 제일 큰 차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