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준비하신 일이 끝난 다음 날 아침에 할 말이 하나도 안 떠올랐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기쁘셔야 할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비어 있었죠. 이 빈 느낌에는 두 이름이 있습니다.
허탈과 허무는 둘 다 안이 비어 있는 상태입니다.
둘 다 의욕이 안 나고, 둘 다 무엇을 해도 시시합니다. 그래서 하나로 부르시는데, 비게 된 경로가 다릅니다.
허탈은 있던 것이 나간 것이고 허무는 애초에 없었던 것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허탈은 붙들고 있던 것이 끝났을 때 옵니다.
시작한 날이 있고 끝난 날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 쏟은 것이 있었고, 끝나면서 그 자리가 비었죠. 그래서 허탈은 언제부터인지 댈 수 있습니다.
허탈은 지나갑니다. 다음에 쏟을 것이 생기면 그 자리가 다시 찹니다.
허무는 원래 의미가 없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옵니다.
끝난 사건이 없어도 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오고, 언제부터인지 잘 안 잡히죠. 그래서 허무는 시작점을 못 댑니다.
허무는 채운다고 안 사라집니다. 자리가 빈 게 아니라 의미 쪽 문제니까요.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그 빈 느낌이 언제부터인지 대실 수 있습니까?
끝난 다음 날 아침부터면 앞쪽입니다. 그러면 지나가는 것이겠지요.
여기가 오늘의 요점입니다.
끝나고 비는 것은 정상입니다. 쏟은 만큼 비니까요. 그런데 그것을 허무라고 부르면 이야기가 커집니다. 내 인생이 의미가 없다는 쪽으로 넘어가죠.
그 자리에서 큰 결정을 하시면 대개 나중에 다시 보게 됩니다. 끝난 직후는 판단하기에 좋은 자리가 아니니까요.
허탈 쪽이면 할 일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며칠에서 몇 주면 지나갑니다. 그동안 큰 결정은 미루시면 되고요.
그리고 다음에 쏟을 것을 미리 하나 정해두시면 그 시간이 짧아집니다. 큰 것일 필요는 없습니다.
허무 쪽이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건 이름을 붙이는 것으로 정리되는 영역이 아닙니다. 몇 주 이상 이어지거나 잠과 식사가 같이 무너지고 있으면 제 자리가 아니고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비어 있는 것은 같습니다. 시작점을 댈 수 있는지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