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 아주머니가 그러시더군요. 큰길 횡단보도 신호가 짧아진 것 같다고요.
다른 이웃분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 뒤로 그 길을 건널 때 좀 세어보게 됐네요.
며칠 지켜보니 보이는 게 있었습니다.
신호가 깜빡이기 시작하면 절반쯤 오신 분들이 갑자기 빨라져요. 짐을 든 분이나 유모차를 미는 분들이 특히 그렇더라고요. 뛰지는 못하고 종종걸음이 되는 겁니다.
같은 시간이 누구에게는 여유가 되고 누구에게는 쫓김이 된다. 시간은 공평하지만 몸은 그렇지 않다.
이상한 건 저는 그동안 짧다고 느낀 적이 없다는 겁니다.
제 걸음으로는 넉넉했으니까요. 짧아졌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 그 신호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불편이 없으면 문제도 안 보이는 셈이군요.
건너다 뛰게 되는 걸 저는 좀 오래 생각했습니다.
원래 그 시간은 걸어서 건널 수 있게 만든 거잖아요. 그런데 실제로는 몇몇 분이 뛰어야 맞습니다. 그러면 그 시간은 모두를 위한 게 아니라 빠른 사람 기준으로 잡힌 거겠지요.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가 결국 누구 편을 드느냐가 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작은 걸 하나 합니다.
신호가 켜져도 바로 안 나서고 한 박자 기다려요. 뒤에 천천히 오시는 분이 있으면 옆에서 같이 건넙니다. 그러면 그분이 좀 덜 급해 보이시더라고요.
물론 신호가 길어지는 건 아니에요. 다만 혼자 뛰는 것과 옆에 누가 있는 건 다르니까요.
이런 건 겪는 분들이 말을 해야 알려지는 것 같습니다.
아주머니가 그날 말씀을 안 하셨으면 저는 지금도 몰랐겠지요. 불편한 사람이 말할 자리가 있으면 그게 어딘가로 전해지기도 하고요. 저는 그 자리에서 듣는 쪽이었을 뿐이지만요.
저는 신호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건 분명해요.
다만 그 길에서 누가 종종걸음이 되는지는 이제 압니다. 알고 나면 옆에서 같이 걷는 정도는 할 수 있는걸요. 오늘 그 길을 건너기 어려우셨다면, 옆에 서서 같이 건널 사람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