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가 처음으로 혼자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한 바퀴 도는 걸 베란다에서 내려다보셨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그게 참 뿌듯했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분은 주말 내내 조립한 책장에 책을 다 꽂고 한 발 물러서 바라보셨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흐뭇했다고 하셨고요. 두 분의 이름을 서로 바꾸면 정확해집니다.
흐뭇함과 뿌듯함은 둘 다 마음이 좋은 것으로 꽉 차오르는 감정입니다.
입꼬리가 올라가고, 그 장면을 한참 보게 되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집니다. 좋은 감정이라는 점이 같으니 섞어 쓰시는 거죠. 그렇다면 무엇이 둘을 가를까요?
흐뭇함은 남의 좋은 모습이나 잘된 일을 바라보며 드는 만족이고, 뿌듯함은 내가 무언가를 해내서 가슴이 차오르는 감정입니다.
흐뭇함에는 바라보는 자리가 있습니다.
자전거를 탄 것은 조카입니다. 내가 한 일이 아니라 조카가 해낸 일을 보면서 마음이 놓이고 좋아지는 거죠. 그래서 흐뭇함에는 약간의 거리가 있습니다.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는 거리처럼요.
뿌듯함에는 내 손이 들어 있습니다.
책장을 조립한 것은 나입니다. 나사를 조이고, 판을 맞추고, 책을 꽂았습니다. 그 결과를 보면서 가슴이 차오르는 거죠. 그래서 뿌듯함에는 거리가 없습니다. 내가 그 안에 있으니까요.
뿌듯함과 보람,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의 차이는 전에 다룬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흐뭇함과의 경계만 보겠습니다.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자전거를 가르쳐 준 사람이 그 분이었다면 흐뭇함 안에 뿌듯함이 조금 섞였겠지요. 손이 들어간 만큼요.
흐뭇함이라면 그 사람에게 말해주시면 됩니다. 잘했다는 말이 그 감정의 자리입니다.
뿌듯함이라면 스스로에게 남겨두셔도 됩니다. 책장 사진 한 장이면 충분합니다. 이름이 정확하면 그 기쁨을 어디에 둘지가 보입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마음이 꽉 차는 것은 같습니다. 해낸 사람이 누구인지만 보시죠.
이름을 붙이면 크기를 잴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