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걸린 일을 마치셨습니다. 축하한다는 말에 그냥 끝나서 다행이라고만 답하셨지요. 그러고는 왜 기쁘지 않은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기쁘지 않은 게 아니라 올라온 감정의 이름이 뿌듯함이 아니었던 겁니다.
뿌듯함은 결과를 봅니다. 내가 만든 것이 있고 그것이 눈에 보일 때 옵니다. 그래서 뿌듯함에는 대상이 있습니다. 무엇이 뿌듯하냐고 물으면 답이 나오지요.
후련함은 종료를 봅니다. 무엇이 남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없어졌는지에 걸려 있습니다. 짐이 내려간 감각이라 가볍기는 한데 손에 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후련함은 빨리 식습니다. 없어진 것은 며칠 지나면 원래 없던 것처럼 되니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일이 길어질수록 그 일은 짐이 됩니다. 처음에는 만들고 싶은 것이었는데 중간부터는 끝내야 하는 것이 되지요.
그러면 마지막에 확인하는 것도 결과가 아니라 종료입니다. 다 만들었다가 아니라 드디어 없어졌다가 되는 겁니다.
기간이 길수록, 중간에 힘든 일이 많았을수록 이쪽으로 기웁니다. 그러니 감흥이 없는 것은 그 일이 하찮아서가 아니라 오래 무거웠다는 증거에 가깝습니다.
일을 마치고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지금 손에 남은 게 무엇입니까?
두 번째로 답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답하고 나서 자기가 일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리시지요. 그 결론은 근거가 부족합니다.
뿌듯함은 결과를 봐야 옵니다. 그런데 일이 끝나면 대개 결과를 안 봅니다. 다음 일로 넘어가거나 그냥 쉬지요.
그러면 만든 것이 눈에 안 들어오니 감정이 켜질 재료가 없습니다. 뿌듯함이 안 오는 게 아니라 볼 기회를 안 준 것입니다.
여기서 자주 걸리는 자리가 있습니다. 결과를 보면 부족한 데만 보인다는 겁니다. 그래서 안 보게 되지요. 그럴 때는 잘된 부분 하나만 정해놓고 그것만 보시는 편이 낫습니다. 전체를 보면 검토가 되고 검토는 감정을 안 켜니까요.
후련함 쪽이면 할 일은 쉬는 것입니다. 짐이 내려간 상태니 회복이 먼저입니다.
뿌듯함이 필요하시면 할 일은 하나 더 있습니다. 끝난 것을 다시 한 번 보는 것입니다. 며칠 지나서 보는 편이 좋습니다. 방금 끝났을 때는 고생만 보이는데, 며칠 지나면 만든 것이 보이거든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대개 그렇습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최근에 끝내신 일이 있으면 오늘 한 번 다시 보시죠. 끝난 것 말고 만든 것을요.
이름을 붙이면 크기를 잴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