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에서 의견이 반박당한 날보다 아무 반응이 없던 날이 더 오래 남았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두 이름이 다른 자리를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경멸과 무시는 둘 다 상대를 제대로 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 다 받는 쪽이 상하고, 둘 다 관계를 끊는 쪽으로 갑니다. 그러면 무엇이 갈릴까요?
경멸은 낮게 보는 것이고 무시는 아예 안 보는 것입니다.
경멸은 상대를 아래에 두고 그렇게 판정한 상태입니다.
보고는 있습니다. 봤고, 재봤고, 낮다고 정한 거죠. 그래서 경멸에는 반응이 있습니다. 비웃거나, 반박하거나, 표정이 나옵니다.
받는 쪽에서는 아프지만 다툴 자리가 있습니다. 판정이 나왔으니 그 판정을 두고 말할 수 있고요.
무시는 그 사람을 셈에 넣지 않는 것입니다.
반응이 없습니다. 의견을 냈는데 아무 말이 안 오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죠. 낮게 본 것도 아닙니다. 아예 안 본 겁니다.
그래서 무시는 다툴 자리가 없습니다. 상대가 아무것도 안 했으니 따질 대상이 없거든요. 그게 더 오래 남는 이유겠지요.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반박은 아프지만 나를 봤다는 뜻입니다. 침묵은 안 아플 것 같은데 더 오래 남더군요.
여기가 오늘의 요점입니다.
사람은 판정보다 존재하지 않는 취급을 더 오래 붙들고 있습니다. 판정은 틀렸다고 반박할 수 있는데, 안 본 것은 반박할 것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무시는 증명이 안 됩니다. 그냥 지나간 것이라 남에게 설명하면 예민한 사람이 되죠. 그래서 혼자 남게 되고요.
경멸 쪽이면 할 일은 그 판정을 따져보는 것입니다. 근거가 없으면 그 판정은 그만큼 깎으시면 됩니다.
무시 쪽이면 할 일은 그 사람과 다투는 게 아닙니다. 다음에 답을 받을 수 있는 형태로 내는 것입니다. 이름을 불러 의견을 묻거나, 기록으로 남기거나요.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그 자리가 그런 자리라는 정보를 얻으신 겁니다. 그것도 알아야 다음을 정할 수 있고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상한 것은 같습니다. 반응이 있었는지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