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에서 두 사람이 비슷한 말을 비슷한 세기로 했습니다. 한 사람은 당당하다는 말을 들었고 다른 한 사람은 무례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목소리 크기도 비슷했고 내용도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이름이 갈렸습니다. 세기로 갈린 것이 아니었지요. 왜 그럴까요?
당당함과 뻔뻔함은 둘 다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요구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구별이 안 됩니다. 눈치를 안 본다는 점만 보면 완전히 같은 태도죠.
갈리는 것은 상대의 몫을 셈에 넣었느냐입니다.
당당한 사람은 자기 요구가 상대에게 무엇을 지우는지 알고 말합니다.
이걸 요구하면 저 사람 일이 늘어난다, 이 자리를 내가 가지면 누군가는 못 가진다. 그걸 알고도 요구합니다. 알고 요구하는 것과 모르고 요구하는 것은 같은 말이라도 다릅니다. 들으신 분도 그 차이를 느끼셨겠지요.
그래서 당당한 사람은 거절당해도 물러납니다. 상대에게도 몫이 있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요.
뻔뻔한 사람은 상대의 몫을 계산에 넣지 않습니다. 나쁜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칸이 아예 비어 있습니다.
그래서 거절당하면 이해를 못 합니다. 왜 안 되냐고 되묻습니다. 자기 요구에 비용이 붙어 있다는 걸 모르니까 거절이 부당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게 사람들이 뻔뻔함에 화를 내는 진짜 이유입니다. 요구가 커서가 아니라 비용을 남이 낸다는 걸 모르는 채로 요구해서입니다.
말하기 전에 이 질문에 답이 나오는지 보시면 됩니다.
답이 나오는데도 요구하는 건 뻔뻔함이 아닙니다. 그건 그냥 요구입니다.
당당한 사람은 거절해도 관계가 남습니다. 상대가 자기 사정을 이미 알고 있다는 걸 느끼니까요.
뻔뻔한 사람은 한 번 들어주면 다음이 옵니다. 셈이 없으니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처음부터 선을 긋습니다. 인색해서가 아니라 끝을 못 보기 때문입니다.
당당했는데 소리를 들으셨다면, 셈은 했는데 그 셈을 말로 안 꺼내신 경우가 많습니다. "이거 부탁드리면 번거로우실 텐데"라는 한 줄을 안 붙이신 겁니다. 속으로 한 계산은 상대에게 안 보입니다.
뻔뻔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으신다면 순서가 다릅니다. 태도를 낮추는 게 아니라 비용을 세는 칸을 하나 만드는 것이 먼저입니다. 낮추기만 하면 요구를 못 하게 될 뿐이고, 그건 다른 문제를 만들더군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당당한 것과 뻔뻔한 것은 세기가 아니라 셈의 유무로 갈립니다.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