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한 분이 한숨을 쉬셨습니다. 대학 시절엔 한 달에 열 권씩 읽었는데, 지금은 한 권도 겨우 읽는다고요. 지금의 자기가 한심하다고 하셨죠. 그런데 반납하시는 그 한 권엔 포스트잇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습니다.
그때가 정점처럼 보입니다. 앞서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을 다룬 글이 있는데, 지난날은 좋은 것만 남아 더 빛나 보이더군요. 숫자로 비교합니다. 몇 권, 몇 시간, 몇 등. 숫자는 쉽게 비교되니 줄어든 것만 크게 보입니다. 조건이 달라진 걸 잊습니다. 그때는 시간이 많았고, 지금은 일과 책임이 있다는 걸요. 남과 비교하지 않으려다 저와 비교합니다. 앞서 남과 자꾸 비교하게 되는 마음을 다룬 글이 있는데, 그 비교가 과거의 저에게로 옮겨 오기도 하더군요.
그 손님의 한 권에 붙은 포스트잇이 말해 주는 게 있었습니다. 예전엔 많이 읽었지만, 지금은 깊이 읽는다는 거죠. 열 권을 훑던 사람이 한 권을 곱씹는 사람이 된 겁니다.
앞서 노력해도 제자리인 시기를 적으며, 보이지 않는 동안에도 뿌리는 자란다고 했습니다. 예전의 나와 숫자로만 비교하면, 그 사이 자란 깊이는 보이지 않죠.
앞서 너 자신이 되어라 뜻을 적었습니다. 니체는 사람이 완성된 무엇이 아니라 되어 가는 존재라고 했죠. 그리고 그 길에는 옆길과 망설임까지 다 쓰인다고요.
예전의 나는 그 되어 가는 길의 앞 구간일 뿐입니다. 지금의 나보다 나은 버전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만든 한 시절이죠. 앞서 니체 구원에 대하여 뜻을 적었는데, 지난날을 "그렇게 원했다"로 품는 것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어제의 너는 뛰어넘을 벽이 아니다. 너를 여기까지 데려다준 길이다. 길과 경주하는 자는 없다.
숫자 말고 결을 비교하십시오. 얼마나가 아니라 어떻게 달라졌는지요. 조건을 함께 떠올리십시오. 그때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은 다르니까요. 지금의 나만 할 수 있는 것을 찾으십시오. 그때는 몰랐던 것, 지금이라서 보이는 것이요. 예전의 나에게 고마워하십시오. 그 시절이 있어 지금이 있으니까요.
그 손님은 그 포스트잇들을 한참 보시더니 웃으셨습니다. 예전엔 이렇게 메모하면서 읽은 적이 없었다고요. 열 권보다 이 한 권이 더 남은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예전의 나와 비교하고 싶은 날은 또 올 겁니다. 그래도 저는 그 시절을 넘어야 할 벽이 아니라 지나온 길로 두고, 지금의 제 결대로 다음 걸음을 이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