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내내 드라마를 보시고 일요일 밤에 더 지쳐 계셨다는 분이 있었습니다. 쉬었는데 왜 더 힘드냐고 물으시더군요.
쉬신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행동에 두 이름이 있고, 그날 하신 건 다른 쪽이었습니다.
위안과 도피는 겉모습이 같습니다.
드라마를 보고, 잠을 자고, 게임을 하고, 산책을 합니다. 목록만 놓고 보면 완전히 같지요. 그래서 어떤 행동이 좋은 쉼이고 어떤 행동이 나쁜 쉼이라는 식의 구분은 잘 맞지 않습니다.
갈리는 것은 그 시간이 끝났을 때 돌아갈 자리가 남아 있느냐입니다.
위안은 잠깐 옆으로 비켜서는 일입니다.
해야 할 일은 그대로 있고, 내가 잠깐 나갔다가 돌아옵니다. 그래서 끝나면 다시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다. 무거운 건 그대로인데 앉을 힘이 조금 생긴 상태입니다.
도피는 그 일이 없는 것처럼 지내는 일입니다.
생각이 안 나게 하려고 봅니다. 그래서 보는 동안 더 몰입하고, 끝나는 순간이 무섭습니다. 끝나면 없어진 줄 알았던 것이 그대로 있고, 시간만 줄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도피 뒤에는 반드시 죄책감이 따라옵니다. 위안 뒤에는 안 따라옵니다. 이게 가장 정확한 표식입니다.
시작할 때는 구분이 안 됩니다. 끝나는 순간에 보시면 됩니다.
같은 두 시간이어도 이 한 줄이 다릅니다. 오늘 그 시간이 끝났을 때 어느 쪽이었습니까?
여기서 하나 짚어야 합니다. 도피를 흉으로 부르려는 게 아닙니다.
감당이 안 되는 크기 앞에서는 사람이 도망갑니다. 그건 고장이 아니라 기능입니다. 문제는 도피를 위안이라고 부를 때 생깁니다. 쉬었다고 이름을 붙이면 왜 안 나아지는지를 영영 못 찾게 되니까요.
위안 쪽이면 더 하셔도 됩니다. 시간을 늘리셔도 되고요.
도피 쪽이면 할 일은 쉬는 방법을 바꾸는 게 아닙니다. 도망치고 있는 그 일이 무엇인지 한 줄로 적는 것이 먼저입니다. 적어놓고 보면 대개 하나입니다. 여러 개 같았는데 하나였다는 걸 알게 되시겠지요.
적은 다음에는 그 하나를 다시 반으로 자르시면 됩니다. 도피는 크기 앞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크기가 줄면 도피할 이유도 줄어듭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쉬고 나서 무거워지셨다면 쉰 게 아니었을 겁니다. 끝난 직후의 한 줄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