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람석에 앉은 손님이 휴대폰을 계속 열었다 닫았다 하셨습니다. 같은 화면을 보시는 것 같았죠. 한참 그러다 일어나시더니 휴대폰을 사물함에 넣고 돌아오셨습니다. 나가실 때 쓴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셨죠. 헤어진 사람 소식을 자꾸 찾아보게 돼서요.
아직 마음이 다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머리로는 끝났다고 알지만, 마음은 그 속도를 못 따라가죠. 확인이 쉽습니다. 몇 번만 누르면 그 사람의 하루가 보입니다. 예전엔 일부러 찾아가야 했던 소식이 이젠 손안에 있죠. 비교하게 됩니다. 그 사람이 잘 지내는지, 저보다 나은지. 확인할수록 마음이 흔들리면서도 멈추기 어렵더군요. 끝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정말 끝났는지, 다시 돌아올 여지는 없는지 계속 묻게 되는 거죠.
한 번 볼 때마다 상처가 조금씩 다시 벌어집니다. 아물 틈이 없죠. 앞서 지난 일이 자꾸 떠오를 때를 적었는데, 이 버릇은 그 떠오름을 손으로 직접 불러오는 셈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 제 하루가 비어 갑니다. 남의 하루를 들여다보느라 제 하루를 놓치는 거죠.
니체는 『도덕의 계보』 둘째 논문에서 잊는 힘을 이야기합니다. 잊는다는 건 약함이 아니라 적극적인 힘이라고요. 잊을 줄 알아야 새로운 것이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고 하죠.
니체는 잊지 못하는 사람을 소화를 못 하는 사람에 빗대기도 합니다. 지나간 일을 삼키지 못하고 계속 되새김질하면 다음 끼니를 먹을 수 없다는 거죠.
지나간 문을 계속 열어 보는 자는 앞에 놓인 문을 열 손이 없다. 닫는 것도 힘이다.
찾아보기 어렵게 만드십시오. 그 손님처럼 휴대폰을 멀리 두거나, 소식이 뜨지 않게 설정하는 겁니다. 의지보다 환경이 빠르더군요. 확인하고 싶을 때 적으십시오. 그 순간 무엇이 궁금했는지 한 줄 적으면, 대개 그 사람이 아니라 제 마음에 관한 것입니다. 빈 시간을 채울 것을 정해 두십시오. 확인하던 시간에 할 일 하나요. 산책이든 책 한 쪽이든. 한 번에 끊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어제보다 한 번 덜 보면 그걸로 충분하죠.
그 손님은 그날 처음으로 책을 한 장 끝까지 읽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뒤로도 도서관에 오시면 휴대폰부터 사물함에 넣으시더군요. 여기 있는 동안만큼은 안 보기로 했다고요.
지나간 사람은 지나간 자리에 두어야 아물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그 문을 조용히 닫는 힘을 하루씩 길러, 비어 있던 제 하루를 제 손으로 다시 채워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