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을 정리하다가 몇 년째 연락 없는 이름들을 봤네요.
지우려고 눌렀다가 확인 창이 뜨니까 그냥 나왔네요. 그러기를 몇 번 했습니다.
어떤 이름 옆에는 제가 예전에 적어둔 별명이 그대로 있더군요.
어디서 만난 사람인지, 무슨 일로 알게 됐는지가 짧게 적혀 있어요. 그걸 보면 그 사람이 아니라 그때의 제가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우리가 버리지 못하는 것은 대개 그 물건이 아니라, 그것을 갖고 있던 시절의 자신이다.
솔직히 말하면 다시 연락할 일은 없겠지요.
몇 년이나 안 했으니 앞으로도 안 하겠지요. 그걸 알면서도 못 지웁니다. 쓸모로 보면 이미 지웠어야 할 것들인걸요.
왜 못 지우나 생각해보면 이런 쪽인 것 같습니다.
지우고 나면 그 사람과 있었던 시간까지 정리되는 것 같은 겁니다. 물론 실제로는 아무 상관 없어요. 목록에서 사라진다고 그 시절이 없어지지는 않으니까요. 그런데 손이 그렇게 안 움직이더군요.
그렇다고 전부 남겨두는 것도 좀 그렇네요.
목록을 넘길 때마다 그 이름들이 지나가니까요. 볼 때마다 아주 잠깐씩 마음이 걸립니다. 큰 무게는 아닌데 자주 지나가면 쌓이는걸요.
그래서 저는 지우는 대신 옮겨봤습니다.
한군데로 모아두고 평소에는 안 보이게 해뒀어요. 지운 것도 아니고 매번 지나치는 것도 아니게요. 이렇게 하니까 목록을 넘길 때 걸리는 게 없어졌네요.
없애는 것과 두는 것 사이에 이런 자리가 하나 있더라고요.
지워야 하는데 못 지운다고 스스로를 미련하다고 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이름들은 미련이라기보다 그 시절이 있었다는 표시에 가깝겠지요. 표시는 좀 남겨둬도 되겠지요. 저도 아직 꽤 남겨두고 지내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