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시간이 지나서도 보고서를 붙들고 계셨다는 분이 있었습니다. 사명감 때문이라고 하셨다고요.
그런데 그 보고서가 무엇에 쓰이는지는 모른다고 답하셨답니다. 일이 왜 필요한지 모르면서도 끝까지 붙든 그 힘은 사명감이 아니라 책임감입니다.
사명감과 책임감은 둘 다 일을 중간에 놓지 못하게 만드는 마음입니다.
늦게까지 남고, 대충 넘기지 않고, 끝나야 마음이 놓입니다. 끝까지 한다는 점이 같으니 섞어 쓰시는 거죠. 그렇다면 무엇이 둘을 가를까요?
사명감은 그 일이 세상이나 누군가에게 왜 필요한지를 알고 그 의미 때문에 하게 되는 마음이고, 책임감은 내가 맡은 일이니 결과까지 내가 지겠다는 마음입니다.
사명감에는 "왜"가 있습니다.
이 일이 누구를 돕는지, 무엇을 바꾸는지를 압니다. 그래서 사명감은 맡지 않은 일에도 손을 뻗게 만듭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의미가 나를 움직이니까요.
의무감과 사명감의 차이는 전에 다룬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는 안 하면 혼나느냐 아쉬우냐로 갈랐고요.
책임감에는 "내 것"이 있습니다.
그 보고서는 내가 맡은 일입니다. 무엇에 쓰이는지는 몰라도, 맡았으니 제대로 끝내야 마음이 놓이죠. 그래서 책임감은 일의 의미와 상관없이 움직입니다. 맡은 범위가 그 힘의 테두리입니다.
책임감과 의무감의 차이도 전에 다뤘습니다.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책임감을 사명감이라고 부르시면 의미를 모르는 일에도 큰 무게를 지게 됩니다. 늦은 퇴근이 길어지는 이유가 그것이겠지요.
사명감이라면 그 의미를 지키되 쉬는 날도 지키셔야 합니다. 의미는 오래 가야 하니까요.
책임감이라면 그 보고서가 무엇에 쓰이는지 한 번 물어보시면 됩니다. 쓰임을 알면 어디까지 할지가 정해지고, 퇴근도 조금 빨라집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끝까지 하게 하는 것은 같습니다. 왜 필요한지 아는지만 보시죠.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