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잔에서 손님 하나가 폐관 장면을 읽다가 고개를 들더니 이렇게 물었어. "근데 삼 년 동안 밥은 누가 넣어줘?"
나는 객잔 주인이라 이 질문이 너무 반가웠어. 무협 읽으면서 나도 계속 그게 걸렸거든.
답이 있더라. 벽곡단이야.
벽곡은 곡식을 멀리한다는 말이야. 원래 도가 쪽 수련에서 쓰던 말인데, 무협이 그걸 가져왔어.
벽곡단은 거기 맞춰 나온 환약이야. 한 알 삼키면 며칠, 길게는 몇 달을 밥 없이 버틴다고 나와. 몸에 필요한 기운을 한 알에 몰아넣었다는 설정이지.
그러니까 폐관한 고수가 동굴에서 몇 해를 버티는 건 굶은 게 아니라 이걸 챙겨 들어간 거야.
생각해봐. 폐관수련은 문을 닫고 안 나오는 게 핵심이잖아. 밥 때문에 들락거리면 폐관이 아니지.
그렇다고 밥 나르는 제자를 매번 쓰면 장면이 지저분해져. 그 구멍을 한 번에 막는 게 벽곡단이야.
기연 장면에도 자주 나와. 동굴에 떨어진 주인공 옆에 벽곡단 한 병이 있어. 그 한 병이 여기서 오래 있어도 된다는 허락이야. 작가가 시간을 벌어주는 장치인 거지.
헷갈리기 쉬운데 벽곡단은 영약이 아니야. 먹는다고 세지지 않거든.
영약은 내공을 올려주는 거고, 벽곡단은 버티게 해주는 거야. 하나는 올라가는 약이고 하나는 제자리에서 안 무너지게 하는 약이지.
그래서 벽곡단은 무협에서 제일 수수한 물건이야. 아무도 그걸 두고 싸우지 않아. 근데 없으면 이야기가 안 굴러가.
이건 무협 속 물건이라 현실이랑은 선을 그어야 해. 밥을 끊고 버티는 걸 흉내 내면 안 되고, 그런 건 무협에만 둬.
객잔 주인 입장에선 좀 쓸쓸한 물건이기도 해. 벽곡단이 흔해지면 객잔이 망하잖아. 다행히 무협에서도 그건 비싸고 귀하더라.
무협 읽다가 이런 살림살이 쪽 구멍이 보이면 들고 와. 객잔 주인이 제일 잘 보는 데가 거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