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에 오셔서 같은 책을 연장하시는 손님이 계셨습니다. 연장할 때마다 이번 주엔 꼭 다 읽겠다고 하시죠. 다섯 번째 연장하던 날, 손님이 스스로 웃음을 터뜨리셨습니다. 남이랑 한 약속이면 벌써 지켰을 텐데, 하시면서요.
그 손님은 약속 시간에 늦는 법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회사 마감도 꼭 지키고요. 그런데 자기와의 약속만은 자꾸 미뤄진다고 하시더군요.
이런 분들이 많습니다. 몇 가지 까닭이 있더군요.
어겨도 아무도 모릅니다. 남과의 약속은 상대가 기다리지만, 저와의 약속은 저만 압니다. 저에게는 다음이 있다고 여깁니다. "내일 하면 되지." 저에게는 늘 너그러운 마감을 주죠. 약속이 너무 큽니다. "이번 주에 다 읽기"처럼 크게 잡으면, 하루만 놓쳐도 다 틀어진 것 같습니다.
한두 번은 괜찮습니다. 다만 쌓이면 저를 믿지 못하게 되죠. "어차피 나는 못 지킬 거야." 그 생각이 다음 약속을 더 가볍게 만듭니다. 앞서 계획만 세우고 시작 못 하는 마음을 다룬 글들이 있는데, 그 바닥에 이 불신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더군요.
니체는 『도덕의 계보』 둘째 논문을 이런 물음으로 엽니다. 약속할 수 있는 동물을 길러 낸다는 것, 그것이 사람에 관한 가장 역설적인 과제가 아니냐고요.
약속한다는 건 미래의 저를 지금의 제가 붙잡는 일입니다. 니체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을 귀하게 봤죠. 제 말을 지킬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제 미래를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이요.
남에게 한 말만 약속이 아니다. 네가 너에게 한 말을 지킬 때, 너는 비로소 네 주인이 된다.
약속을 작게 쪼개십시오. "이번 주에 다 읽기" 대신 "오늘 열 쪽"으로요. 누군가에게 말해 두십시오. 저와의 약속을 남과의 약속처럼 만드는 겁니다. 다만 말만 하고 끝나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앞서 하기로 한 일을 남한테 먼저 말해 버리는 버릇을 적었는데, 말한 것으로 만족해 버리는 함정이 있더군요. 지킨 날을 표시하십시오. 달력에 작은 점 하나면 됩니다. 쌓인 점이 저를 믿게 해 주죠. 어긴 날은 다음 날로 넘기십시오. 한 번 어겼다고 전부를 포기하지 않는 겁니다.
그날 그 손님은 약속을 바꾸셨습니다. 이번 주에 다 읽기 대신, 매일 출근길에 한 장씩. 두 주 뒤 그 책을 반납하러 오셨죠. 끝까지 읽었다고, 이번엔 연장 안 해도 된다고 웃으셨습니다.
저와의 약속은 아무도 지켜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게 정하고 하나씩 지키면서, 제 말을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저를 만들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