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책을 세 번째 빌려 가시면서 좀 민망하다고 웃으신 분이 있었습니다.
읽을 책이 이렇게 많은데 왜 같은 걸 또 보나 싶으셨던 거죠. 저는 그게 민망할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아무 책이나 두 번 읽을 값을 하지는 않아서, 그 기준을 적어두겠습니다.
지내면서 정리된 게 있습니다. 다시 읽을 때 남는 게 있는 책은 대체로 이런 것들입니다.
처음에 다 못 알아들은 책. 어려워서 놓친 게 있는 책이죠. 두 번째에는 그 부분이 붙습니다.
내가 그 사이에 겪은 일이 있는 책. 같은 문장이 다르게 읽히는 건 책이 변해서가 아니라 읽는 사람이 변해서입니다. 몇 해 지나서 읽으면 아예 다른 대목에 밑줄이 그어집니다.
구조가 촘촘한 책. 뒤를 알고 앞을 읽으면 처음에 안 보이던 연결이 드러나는 소설들이 있죠.
반대쪽도 있습니다.
정보를 전하는 책. 필요한 걸 얻었으면 그걸로 끝입니다. 다시 읽는 대신 필요할 때 찾아보시면 되죠.
줄거리로 끌고 가는 책. 뒤를 알면 힘이 확 빠지는 종류가 있습니다.
한 번에 다 이해된 책. 다 알아들었으면 그건 잘 쓰인 책인 거고, 두 번 읽을 이유는 적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또 읽으면 값이 안 납니다. 저는 이렇게 합니다.
빠르게 훑지 말고 한 장만 고르십시오. 전체를 다시 읽는 대신 기억에 남은 대목만 펴는 겁니다. 그 한 장에서 얻는 게 처음 완독보다 클 때가 있죠.
전에 그은 밑줄을 보십시오. 몇 해 전의 내가 어디에 밑줄을 그었는지가 지금의 나와 다르면, 그 차이가 그 자체로 읽을 거리입니다.
메모를 남기십시오. 다음번에 또 다르게 읽힐 테니까요.
다시 읽는 게 부담이 되는 이유는 안 읽은 책이 쌓여 있기 때문이죠. 그 목록을 보면 같은 책을 또 보는 게 낭비 같습니다.
그런데 안 읽은 책 목록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하나 읽으면 둘이 늘죠. 그걸 다 없애고 다시 읽겠다고 하면 그날은 안 옵니다.
다시 읽는 일은 앞으로 못 나간 것이 아니라, 같은 자리를 다른 높이에서 지나가는 것이다.
민망해하시길래 저는 그 책의 어디가 좋으시냐고 여쭤봤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와 다른 대목을 말씀하시더군요.
같은 책을 세 번 읽으셨는데 세 번 다 다른 책을 읽으신 겁니다. 저는 그게 이 일의 좋은 자리라고 봅니다.
민망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시 읽는 건 뒤로 가는 게 아니라 다른 자리에서 읽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