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책을 네 번 빌려 가신 분이 있어요. 반납될 때마다 접힌 쪽이 달랐습니다. 처음엔 앞쪽, 두 번째는 가운데, 세 번째는 거의 끝이었죠.
책은 그대로였는데 그분이 걸리는 자리가 매번 옮겨간 겁니다. 저는 그 기록을 오래 들여다봤어요.
우리는 재독을 낭비로 여기더군요. 안 읽은 책이 쌓여 있는데 이미 아는 내용을 또 본다는 게 손해 같으니까요.
그런데 책이 같아도 읽는 사람이 달라져 있습니다. 그 사이에 겪은 일, 새로 생긴 문제, 달라진 처지가 독자를 바꿔놓았으니까요. 같은 문장이 다르게 읽힌다면 그건 책이 아니라 내가 이동했다는 증거더군요.
저는 재독의 값이 여기 있다고 봅니다. 새 책은 새 정보를 주지만, 다시 읽는 책은 내가 얼마나 움직였는지를 알려줘요. 예전에 밑줄 친 자리가 시시해 보인다면 그만큼 온 거고, 예전에 그냥 넘긴 문장이 이번에 걸린다면 그 문제가 이제 내 것이 된 겁니다.
같은 강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면, 두 번째 물은 너를 재는 자다.
이 재기는 새 책으로는 못 합니다. 기준선이 없으니까요.
편해서 다시 읽는 경우도 있어요. 이미 아는 책은 안전하니까요. 저는 그럴 때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이 책이 편해서 잡는 건지, 이 책이 아직 안 끝나서 잡는 건지 말이죠.
전자면 잠시 덮습니다. 후자면 세 번이든 네 번이든 봐요. 안 끝난 책은 계속 부르더군요.
다시 읽는 게 아깝게 느껴진다면, 새 책의 권수를 세는 습관을 잠깐 내려놓아도 됩니다. 예전에 밑줄 친 책 한 권을 꺼내 그 자리만 다시 보세요.
그 문장이 예전과 다르게 읽힌다면, 그건 시간이 흘러서가 아니라 내가 움직여서입니다. 그 이동의 크기는 내가 확인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