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행에 세 권 챙겨 가서 한 쪽도 못 읽었다고 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가방만 무거웠다고 하시더군요. 저도 여러 번 그랬습니다.
집에서 고를 때와 현지에서 펼 때의 내가 다릅니다.
고를 때는 여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동안 못 읽은 두꺼운 책, 벼르던 어려운 책을 넣게 되죠. 앞서 책을 사면 읽을 시간까지 산 것 같을 때를 적었는데, 여행 가방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실제로는 지칩니다. 하루 걷고 들어오면 어려운 책이 안 펴집니다. 잠들기 전 십 분에 읽히는 건 전혀 다른 책이고요.
여행에서 실제로 읽히는 책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끊어 읽어도 되는 것. 이동 중에 십 분씩 읽게 되니까요. 수필이나 짧은 소설이 맞습니다. 앞서 단편이 좋은 이유를 적었는데, 이 자리에서 값을 크게 합니다. 이미 아는 책. 다시 읽는 책이 오히려 잘 읽힙니다. 흐름을 놓쳐도 되니까요. 가벼운 것. 무게가 곧 안 들고 나가는 이유가 됩니다. 잃어버려도 되는 것. 아끼는 책은 안 가져가시는 게 낫습니다. 물에 젖고 모래가 들어갑니다.
한 권이면 충분합니다. 세 권 가져가서 한 권도 안 읽는 것보다 한 권 가져가서 그 한 권을 읽는 쪽이 낫죠.
다 읽으실 것 같으면 전자책을 하나 더 넣어두시면 됩니다. 앞서 도서관 전자책 얘기를 적었는데, 여행 가기 전에 빌려두시면 짐이 안 늘죠.
이건 제가 좋아하는 방법이라 적어둡니다.
가시는 곳을 배경으로 한 책 한 권을 가져가시면 여행이 달라집니다. 앞서 책에 나온 곳에 가보는 일을 적었는데, 순서를 바꾼 셈이죠. 거리에 서서 그 대목을 읽으면 그 장면이 오래 남습니다.
현지 서점에 들르시는 것도 권합니다. 글자를 못 읽으셔도 그 동네 사람들이 뭘 읽는지는 보입니다.
한쪽만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여행에서 책을 못 읽는 건 잘못이 아닙니다. 볼 게 많아서 안 읽히는 거라면 그쪽이 맞는 여행이죠.
그래서 저는 요새 얇은 책 한 권만 넣습니다. 읽으면 좋고 안 읽어도 무겁지 않게요. 못 읽고 돌아와도 아쉽지 않은 정도가 딱 맞더군요.
여행에 챙겨 가는 책은 읽을 책이 아니라, 읽을 수도 있는 책이면 된다.
다음 여행에는 한 권만 가져가셨습니다. 전에 읽으신 책으로요.
그 한 권을 두 번 읽고 오셨다고 하시더군요. 무게는 삼분의 일이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