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프로젝트에서 혼자 한 일이 다른 사람 이름으로 발표됐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의를 제기하려고 보니 마감이 바로 전날 지나 있었다고요.
그 분은 억울하다고 하셨습니다. 발표 당일까지는 억울함이 맞았습니다. 마감이 지난 것을 안 순간부터는 원통함에 가깝습니다.
원통함과 억울함은 둘 다 내 잘못 없이 손해를 보거나 누명을 썼을 때의 감정입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그 일을 계속 곱씹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집니다. 부당하다는 점이 같으니 섞어 쓰시는 거죠. 그렇다면 무엇이 둘을 가를까요?
억울함은 부당한 일을 당했지만 아직 바로잡을 길이 있는 감정이고, 원통함은 그 길이 막혀 돌이킬 수 없게 된 뒤 사무치는 감정입니다.
억울함은 부당하다는 판단과 함께 옵니다.
내가 한 일이다, 내 잘못이 아니다. 그리고 그걸 밝힐 방법이 아직 있습니다. 말할 사람이 있고, 낼 수 있는 자료가 있고, 이의를 제기할 기한이 남아 있죠. 그래서 억울함은 무언가를 하게 만듭니다. 바로잡으려는 쪽으로요.
억울함과 분함, 서운함과 억울함의 차이는 전에 다룬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원통함과의 경계만 보겠습니다.
원통함은 바로잡을 길이 사라진 뒤에 옵니다.
기한이 지났고, 밝힐 자리가 없어졌고, 되돌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부당함은 그대로인데 손쓸 방법이 없죠. 그래서 원통함은 억울함보다 깊고 오래갑니다. 행동으로 풀 수 없으니 마음에 남는 겁니다.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마감이 하루만 남아 있었어도 그 분의 감정은 억울함이었겠지요. 이름을 바꾼 것은 하루였습니다.
억울함이라면 지금 할 일이 있습니다. 남은 길을 찾아 쓰시면 됩니다. 정식 절차가 끝났어도 기록을 남기거나 다음 평가 때 말할 자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통함이라면 바로잡을 길을 계속 찾는 것이 오히려 상처를 키울 수 있습니다. 닫힌 길과 열린 길을 구분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부당한 것은 같습니다. 아직 길이 있는지만 보시죠.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