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 앞에서 손님 한 분이 책 표지를 찍고 계셨습니다. 『선악의 저편』. 친구에게 보내면서 웃으시더군요. 착하게 살 필요 없다는 책이래, 하시면서요.
제목이 그렇게 들리는 건 이상하지 않습니다. 다만 니체 자신이 이 제목에 단서를 달아 두었죠.
『선악의 저편』은 니체가 1886년에 낸 책입니다. 부제는 "미래 철학의 서곡"이죠. 짧은 글과 잠언 수백 개로 되어 있고, 그 시대 철학자들이 당연하게 여기던 전제들을 하나씩 의심합니다.
이듬해 낸 『도덕의 계보』 첫째 논문 끝에서 니체는 이 제목을 직접 언급합니다. "선악의 저편"이라는 말은 적어도 "좋음과 나쁨의 저편"을 뜻하지는 않는다고요.
이 구분이 핵심입니다. 니체가 넘어서려 한 건 "선과 악"이라는 특정한 틀이었습니다. 무언가를 악으로 규정하고 그 반대편에 저를 세우는 방식이죠. 앞서 르상티망을 적었는데, 원한에서 태어난 그 가치 판단이 니체가 문제 삼은 쪽이었습니다.
반면 좋음과 나쁨, 그러니까 무엇이 삶을 북돋우고 무엇이 꺾는지를 가리는 일은 니체가 버린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걸 더 정직하게 하자는 쪽이었죠.
"도덕이 없다는 말이다." 아닙니다. 물려받은 도덕을 그대로 따르지 말고 다시 물으라는 말에 가깝죠.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말이다." 이것도 아닙니다. 니체는 오히려 자기에게 엄격한 사람을 높이 쳤습니다. "착하게 살 필요 없다." 착함이 무엇인지 스스로 따져 보라는 거지, 착함을 버리라는 게 아니었습니다.
남이 그어 준 선 앞에서 멈추지도, 그 선을 비웃지도 마라. 선이 왜 거기 있는지 물어라. 그리고 네 선을 그어라.
저편은 기준이 없는 곳이 아니라 기준을 만드는 자리일 겁니다. 남이 정한 선악을 받아 적는 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나, 무엇이 정말 좋은지를 제가 묻는 자리죠.
그래서 이 책은 생각보다 무거운 숙제를 줍니다. 정답을 받아 쓰는 것보다 스스로 정하는 쪽이 훨씬 힘이 드니까요. 앞서 니체 자유정신을 적었는데, 『선악의 저편』은 그 자유정신에게 건네는 책이기도 합니다.
설명을 듣고 그 손님은 친구에게 한 줄을 더 보내셨습니다. 아니래, 착함을 다시 따져 보라는 책이래, 하고요. 그러고는 그 책을 빌려 가셨죠.
남이 정한 선악을 그대로 따르는 게 편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저는 한 번씩 그 선이 왜 거기 있는지 묻고, 제가 지킬 선은 제 손으로 다시 그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