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일을 겪고도 한 사람은 그럴 수 있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몇 달을 못 넘기던 자리를 봤습니다.
성격 차이로 보이더군요. 그런데 앞에 있던 것이 달랐습니다.
배신감과 실망은 둘 다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내려간 상태입니다.
둘 다 거리를 두게 만들고, 둘 다 다시 붙기가 어렵습니다. 며칠 전에 말씀드린 서운함과 실망도 이 근처였죠. 그러면 이 둘은 무엇이 갈릴까요?
앞에 믿음이 있었느냐입니다.
실망은 이만큼은 할 줄 알았는데 안 됐을 때 옵니다.
기준이 능력이나 됨됨이입니다. 믿음까지 걸지는 않은 상태죠. 그래서 실망은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조정하면 정리됩니다.
실망은 지나갑니다. 기대를 낮추면 끝나니까요.
배신감은 이 사람만은 그러지 않을 거라고 믿었는데 그랬을 때 옵니다.
앞에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며칠 전에 말씀드린 대로 믿음은 겪어서 쌓인 것이라, 그것이 깨지면 쌓인 시간까지 같이 흔들립니다.
그래서 배신감은 오래 갑니다. 그 사람 한 명이 아니라 내 판단까지 흔들리니까요.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그 사람이 그러지 않을 거라고 믿으셨습니까?
같은 일을 겪고 한쪽만 오래 간 것은 그래서겠지요. 앞에 걸어둔 것이 달랐던 겁니다.
여기가 오늘의 요점입니다.
실망은 그 사람 쪽 이야기로 끝납니다. 그런데 배신감은 내 쪽으로 넘어옵니다. 왜 그걸 못 봤을까,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없나 하고요.
그래서 배신감을 실망이라고 부르면 왜 이렇게 오래 가는지가 설명이 안 됩니다. 남들은 넘겼는데 나만 못 넘긴 것 같아지고요.
실망 쪽이면 할 일은 그 사람에 대한 기대를 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납니다.
배신감 쪽이면 할 일은 그 사람을 다시 보는 게 아닙니다. 믿음이 어디까지 맞았는지 나눠 보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전부 거짓이었던 경우는 드뭅니다. 어느 부분에서 어긋났는지만 짚으시면 내 판단까지 버리지 않아도 됩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그 사람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같습니다. 앞에 믿음이 있었는지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