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을 잘한 사람이 한 번 어긋났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시는 동안 앞의 열 번까지 전부 의심 대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건 실망이 아닙니다. 환멸입니다.
실망은 양의 문제입니다. 기대한 만큼에서 모자란 것입니다. 여덟을 기대했는데 다섯이 왔을 때 생깁니다. 다섯은 그대로 인정됩니다. 모자란 셋만 아쉬운 것이지요.
환멸은 판정의 문제입니다. 양이 아니라 종류가 바뀝니다. 그 사람이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결론이 서면, 이전에 받은 다섯까지 다시 계산됩니다. 진심이 아니었던 걸로, 혹은 몰라서 속았던 걸로요.
그래서 실망은 뺄셈이고 환멸은 재계산입니다.
가장 확실한 구별점은 여기입니다. 실망은 과거를 건드리지 않습니다. 지난번에 고마웠던 일은 여전히 고마운 일로 남습니다.
환멸은 과거를 회수합니다. 좋았던 기억이 부끄러운 기억으로 바뀝니다. 이게 환멸이 유난히 무거운 이유입니다. 손실이 지금 것만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것까지 포함되니까요.
무겁다고 느끼신다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계산해야 할 양이 더 많은 겁니다.
지금 그 마음을 두고 하나만 물어보시면 됩니다. 그 사람과 좋았던 일을 떠올리면 지금 어떻습니까?
두 번째면 이름을 바꾸셔야 합니다. 실망이라고 부르면서 실망에 맞는 처방을 기대하면 어긋나니까요.
한 번의 어긋남이 곧바로 환멸이 되지는 않습니다. 사이에 한 단계가 있습니다. 설명을 안 들은 채로 결론을 먼저 내리는 단계입니다.
사람은 빈칸을 오래 못 견딥니다. 이유를 모르면 최악의 이유를 넣어 채웁니다. 그렇게 채워진 이유가 굳으면 그때 종류가 바뀝니다. 그러니 아직 물어볼 수 있는 관계라면 물어보시는 게 낫습니다. 확인은 관대함이 아니라 계산을 정확히 하려는 일이니까요.
물어봤는데도 답이 안 맞으면 그때는 환멸이 맞습니다. 그 판정 자체는 틀린 게 아닙니다.
실망 쪽이면 할 일은 기대치를 다시 적는 것입니다. 관계를 끊을 일이 아니라 이 사람에게 여덟을 기대했던 자리를 다섯으로 옮기는 일이지요.
환멸 쪽이면 기대치 조정으로는 안 됩니다. 그건 양의 조정인데 바뀐 건 종류니까요. 환멸에 맞는 일은 역할을 바꾸는 것입니다. 가까이 두던 자리에서 한 칸 물리는 것까지가 여기에 맞는 처리입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무너진 것이 이번 한 번인지 지난 전부인지 세어보시죠. 세어보면 지금 붙일 이름이 나옵니다.
이름을 붙이면 크기를 잴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