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에서 오간 말이 마음에 걸려 며칠 뒤에 다시 꺼내신 분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기억을 못 하더군요.
그분만 그 며칠을 들고 계셨던 겁니다. 이런 자리가 꽤 자주 생깁니다.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 남는 게 다르죠.
어떤 사람은 그 자리에서 털고 갑니다. 어떤 사람은 집에 와서 다시 꺼내 보죠. 앞서 화가 나중에 오는 성격을 적었는데 비슷한 자리입니다. 처리 속도가 다른 것이지 누가 더 진지한 게 아닙니다.
그런데 며칠 붙들고 있던 쪽에서는 나만 유난한 것 같아집니다.
여기가 갈리는 대목입니다.
가볍게 넘긴 사람은 그 자리에서 처리를 끝낸 겁니다. 오래 붙든 사람은 아직 안 끝난 것이고요. 무게가 아니라 마무리 시점의 차이죠.
그러니 스스로를 예민하다고 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 미결이 오래 가면 그건 그것대로 힘이 드니, 어딘가에서 닫아주셔야 합니다.
이게 실제로 손해가 나는 자리죠.
내가 며칠 생각했으니 상대도 그랬을 거라고 전제하면, 다시 꺼냈을 때 아무것도 안 돌아옵니다. 그러면 무시당한 것 같아지죠. 앞서 섭섭함이 야속함으로 굳는 얘기를 다른 자리에서 본 적이 있는데 비슷한 경로입니다.
상대는 안 들고 있습니다. 그건 나를 가볍게 봐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처리가 끝나서입니다.
다시 꺼내는 게 잘못은 아닙니다. 다만 방식이 있습니다.
기억 못 할 거라고 전제하고 시작하십시오. 저번에 이런 얘기가 있었는데, 하고 짚어주시면 됩니다. 기억하느냐고 물으면 상대가 먼저 미안해지죠.
그리고 왜 걸렸는지를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 말이 잘못됐다가 아니라 제가 이런 게 걸렸다고요. 앞쪽은 따지는 말이고 뒤쪽은 알려주는 말입니다.
한쪽만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며칠 들고 있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나온 것들을 기억합니다. 나중에 그 얘기를 정확히 꺼낼 수 있고요. 앞서 늦게 오는 말이 오래 남는다고 적었는데 같은 자리입니다.
가볍게 넘기는 사람은 편한 대신 그게 안 남습니다.
오래 붙드는 사람과 빨리 놓는 사람이 한 자리에 있으면, 그 자리를 기억하는 쪽은 늘 앞쪽이다.
그분은 결국 짧게만 말씀하시고 넘어가셨습니다.
저는 나중에 그 얘기를 따로 여쭤봤습니다. 그러셨더니 그제야 정리가 됐다고 하시더군요. 꺼낼 데가 한 군데는 필요했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