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짧아지는 게 열람실에서 먼저 보입니다. 저녁 여섯 시쯤이면 손님들이 하나둘 책상 위 스탠드를 켜시죠. 여름엔 없던 풍경입니다.
그걸 보고 있으면 오래된 말 하나가 떠오릅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죠.
이 말의 뿌리로 흔히 꼽히는 것이 등화가친(燈火可親)입니다. 당나라 문인 한유가 아들에게 공부를 권하며 쓴 시에 나오는 구절이죠.
오랜 장맛비가 개고 서늘한 기운이 들판에 들어오니, 등불을 가까이할 만하고 책을 펼칠 만하다. 대략 이런 뜻입니다.
눈여겨볼 건 이유가 날씨라는 점입니다. 가을이 특별히 지적인 계절이어서가 아니라, 더위가 물러가고 밤이 길어져서 등불 아래 앉아 있기 좋다는 거죠. 아주 몸의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까닭은 단순합니다.
밤이 길어집니다. 해가 지면 밖에서 할 일이 줄죠. 덥지 않습니다.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온도가 됩니다. 한 해의 끝이 보입니다. 무언가 정리하고 싶어지는 때죠. 책은 정리하기 좋은 도구입니다.
9월을 독서의 달로 정해 두고 도서관마다 행사를 여는 것도 이 오래된 말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서가 안쪽에서 본 가을은 말처럼 한결같지는 않더군요. 날이 좋은 주말엔 오히려 열람실이 헐거워집니다. 다들 밖으로 나가시죠. 하늘이 높은 날 실내에 앉아 있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신 평일 저녁이 달라집니다. 퇴근길에 들러 한 시간쯤 앉았다 가시는 분이 늘죠. 스탠드를 켜는 손님이 늘어나는 게 그 시간대입니다. 가을의 독서는 주말보다 저녁에 있는 셈입니다.
계절이 사람을 읽게 만들지 않는다. 계절은 밤을 길게 할 뿐이다. 그 밤을 주는 대로 받을지, 제 것으로 쓸지는 각자의 몫이다.
거창하게 고르실 필요는 없습니다. 등화가친은 무엇을 읽으라는 말이 아니라 앉을 만하다는 말이니까요.
저녁 한 시간에 끝낼 수 있는 얇은 책이나, 여름 내내 미뤄 둔 한 권이면 충분하겠죠. 앞서 얇은 책만 손이 가는 이유를 적었는데, 가을밤엔 그게 흠이 아닙니다.
오늘도 여섯 시가 넘자 초록 불빛이 하나씩 늘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되더군요.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은 약속이 아니라 초대에 가깝습니다. 길어진 밤이 그냥 흘러가게 둘 수도 있죠. 그래도 저는 그 밤에 불 하나를 켜 두는 쪽을 고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