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에게 하루 연락이 없자 그날 일정을 전부 취소하셨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본인은 그만큼 소중해서 그렇다고 하시더군요.
소중한 것은 맞습니다. 다만 소중함의 크기와 지금 벌어진 일은 다른 얘기입니다.
애착과 의존은 대상을 아낀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둘 다 중요하게 여기고, 둘 다 잃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세기로도 안 갈립니다. 아주 깊은 애착이 있고 얕은 의존도 있습니다.
갈리는 것은 그것이 없을 때 내가 서 있을 수 있느냐입니다.
애착은 그 대상이 내 삶에 더해진 상태입니다.
있으면 좋고, 있어서 하루가 나아지고, 그것을 중심으로 다른 것들이 배치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잠깐 없어도 나머지는 돌아갑니다.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다른 사람을 만납니다.
그래서 애착이 있는 사람은 그 대상에게 여유를 줄 수 있습니다. 하루 연락이 없어도 그 시간을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으니까요.
의존은 그 대상이 내 삶의 다른 부분을 대신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것이 있어서 하루가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 말고는 굴릴 것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잠깐만 없어도 하루가 통째로 멈춥니다. 일정을 다 취소하게 되는 것도 그래서겠지요.
의존이 흉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이건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내 쪽 목록이 비어 있다는 신호입니다.
이렇게 해보시면 됩니다. 그것이 내일 사라진다면 내 하루에서 무엇이 남습니까?
떠오르는 게 적다고 해서 상대를 덜 사랑하는 건 아닙니다. 그 목록의 길이는 사랑의 크기와 무관합니다.
이름이 섞이면 상대에게 값이 갑니다.
의존인데 애착이라고 부르면 상대가 잠깐 멀어지는 것도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자주 확인하게 되고, 확인이 잦아지면 상대는 답답해집니다. 그렇게 되면 정말로 멀어지는 쪽으로 갑니다.
의존이라고 정확히 부르면 손댈 자리가 상대가 아니라 내 쪽으로 옮겨옵니다. 그게 이 이름의 쓸모입니다.
애착 쪽이면 할 일은 없습니다. 잘 지내고 계신 겁니다.
의존 쪽이면 할 일은 그 사람을 덜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다른 칸을 하나 만드는 것입니다. 혼자 하는 일 하나, 다른 사람 한 명, 정해진 시간 하나요. 크지 않아도 됩니다.
칸이 늘어나면 같은 사람을 같은 크기로 좋아하면서도 하루가 안 멈춥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아끼는 크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없을 때 남는 것만 세어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