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한 분이 메모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직을 두고 다섯 사람에게 물어본 내용이었죠. 찬성이 둘, 반대가 셋이었습니다. 그런데 손님이 웃으며 털어놓으셨습니다. 근데 사실 다섯 명이 다 말려도 갈 생각이었어요.
확신이 필요합니다. 마음은 정했는데 혼자서는 불안하죠. 누군가 "잘했다"고 말해 주길 바라는 겁니다. 책임을 나누고 싶습니다. 일이 잘못되면 "나도 물어봤어"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반대 의견을 미리 들어 보고 싶습니다. 어떤 걸림돌이 있을지 확인하는 거죠. 말로 꺼내야 정리가 됩니다. 앞서 말보다 글이 편한 성격을 다룬 글이 있는데, 어떤 분들은 남에게 말하면서 비로소 생각이 정리되더군요.
답을 정해 두고 묻는 게 다 위선은 아닙니다. 위의 이유들 가운데 몇은 정직하고 쓸모 있는 이유죠. 반대 의견을 들으며 준비할 수도 있고, 말하면서 마음을 굳힐 수도 있습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건, 스스로 그걸 모르고 있을 때입니다. 조언을 구해 놓고 따르지 않으면 상대는 서운해지고, 저도 왜 물었는지 헷갈리게 되죠.
앞서 중력의 영 뜻을 적으며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빌렸습니다. "이것이 나의 길이다. 너희의 길은 어디 있느냐?" "그 길"이란 없다. 남의 길을 물어도, 결국 걷는 건 제 길이라는 거죠.
니체는 또 제자들에게 자신을 따르지 말고 스스로 찾으라고 했습니다. 앞서 베푸는 덕을 적었는데, 가장 좋은 조언자는 답을 쥐여 주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고르게 해 주는 사람이었던 셈입니다.
남에게 길을 묻는 것은 지도를 빌리는 일이다. 어느 길로 갈지는 끝내 네 발이 정한다.
묻기 전에 제 답을 적어 두십시오. 이미 정한 게 있는지 스스로 먼저 확인하는 겁니다. 원하는 걸 솔직히 말하십시오. "이미 마음은 정했는데, 걸리는 게 있으면 말해 줘." 상대도 덜 허탈하죠. 반대 의견은 준비물로 쓰십시오. 따르지 않더라도, 걸림돌 목록으로는 쓸 수 있습니다. 조언해 준 사람에게 결과를 알려 주십시오. 따르지 않았더라도요. 그게 예의입니다.
그 손님은 결국 옮기셨다고 합니다. 반대했던 세 분에게 먼저 연락해서, 걱정해 준 덕분에 준비를 더 했다고 말씀하셨다고요. 오히려 그 세 분이 가장 크게 응원해 주더라고 하시더군요.
남에게 묻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그래도 저는 왜 묻는지 정직하게 알고 묻고, 들은 말을 지도 삼아 제 길은 제 발로 정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