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약속 장소에 늘 일찍 도착합니다. 삼십 분쯤 먼저 도착해서 근처를 돕니다.
그런데 들어가는 건 정각이에요. 도착과 입장 사이의 그 삼십 분이 저한테는 꽤 이상한 시간입니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면 걸음이 저절로 느려지더라고요.
두 블록쯤 남았을 때부터 그렇습니다. 이대로 가면 너무 일찍 도착하니까 몸이 알아서 속도를 줄이는 거예요. 그러다 결국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서 음료를 하나 사고 마십니다.
우리는 늦을까 봐 일찍 나서고, 일찍 도착한 뒤에는 그 시간을 어떻게 쓸지 몰라 서성인다.
왜 그렇게까지 일찍 나가나 생각해보면 늦는 게 무서워서입니다.
늦으면 상대가 기다리게 되고, 기다리는 동안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할지가 자꾸 그려져요. 그 그림이 싫어서 아예 여유를 크게 잡는 겁니다. 부지런한 게 아니라 겁이 많은 쪽이겠지요.
그런데 이상한 건 일찍 도착해놓고 먼저 안 들어간다는 거예요.
먼저 앉아 있으면 상대가 미안해할까 봐 그럽니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하는 말을 듣는 게 싫은걸요. 그래서 밖에서 시간을 다 쓰고 정각에 문을 엽니다.
결국 기다리는 건 제가 다 하고, 기다린 티는 안 내는 셈이군요.
그렇게 버려지는 시간이 아까울 것 같은데 의외로 그렇지가 않습니다.
근처를 도는 동안 저는 그 동네를 좀 보게 돼요. 어느 집 화분이 늘었다든가 간판이 바뀌었다든가 하는 것들이요. 약속 때문에 온 동네인데 약속 전에 본 것들이 더 오래 남을 때도 있는걸요.
서성이는 대신 요즘은 앉을 데를 하나 정해둡니다.
버스 정류장 의자든 계단이든 상관없어요. 거기 십 분쯤 앉아 있다가 들어갑니다. 서 있는 것보다 앉아 있는 게 마음이 덜 급하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어디를 가도 먼저 나와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꽤 있는 거겠지요.
그 사람들도 아마 근처를 한 바퀴 돌고 정각에 들어왔을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그 삼십 분이 저 혼자만의 시간은 아닌 셈이네요.
오늘 어딘가에 너무 일찍 도착해서 서성이셨다면, 그 시간에 본 것들도 그날에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