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에 열두 칸이 적혀 있는데 넉 달째 밀리는 것은 늘 혼자 하는 일이라고 하시더군요.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두 종류가 한 달력에 섞여 있어서 그렇습니다.
약속과 일정은 달력에서 구별이 안 됩니다.
둘 다 시간과 장소가 적히고, 둘 다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로 묶어 관리하시는데, 지켜지는 힘이 다릅니다.
갈리는 것은 어겼을 때 기다리는 사람이 있느냐입니다.
약속은 다른 사람과 함께 정한 것입니다.
내가 안 나가면 저쪽이 기다립니다. 그래서 약속은 웬만하면 지켜집니다. 지키는 힘이 내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상대 쪽에서 오거든요.
몸이 무거워도 나가게 되는 것이 이 힘 때문입니다.
일정은 나 혼자 정한 것입니다.
운동, 병원 예약을 알아보는 일, 서류 정리, 공부. 안 해도 아무도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키는 힘을 전부 내가 대야 합니다.
그러니까 일정이 밀리는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밀어주는 힘이 애초에 없어서입니다. 조건이 다른 겁니다.
칸마다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내가 안 하면 누가 기다립니까?
열두 칸을 이 기준으로 두 줄로 나눠보시면 밀린 것들이 어느 쪽에 몰려 있는지 바로 보이겠지요.
여기가 오늘의 요점입니다. 일정을 지키려면 없는 힘을 만들어야 합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상대를 만드는 것입니다. 운동을 같이 갈 사람을 정하거나, 누구에게 언제까지 하겠다고 말하거나요. 그러면 일정이 약속으로 바뀝니다.
상대를 못 만드는 일이면 크기를 줄이시면 됩니다. 힘이 적으니 무게도 적어야 합니다. 한 시간짜리 일정은 밀리고 십 분짜리는 됩니다.
약속이 밀리시면 그건 다른 문제입니다. 그때는 개수가 많은 것이니 줄이셔야 합니다.
일정이 밀리시면 자책하실 일이 아닙니다. 할 일은 상대를 붙이거나 크기를 줄이는 것 둘 중 하나입니다.
한 달력에 두 종류를 섞어두면 매번 같은 쪽만 밀리고, 그걸 볼 때마다 자기를 탓하게 됩니다. 칸을 갈라두는 것만으로 그게 줄어듭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달력에는 같이 적혀 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지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